고대사

사이드카 오토바이로 후송된 대령, 그리고 블레이드 포스의 전투

사이드카 오토바이로 후송된 대령, 그리고 블레이드 포스의 전투

철길 위를 달린 구급 사이드카

기지가 발랐던 이 공수부대원들은 멀쩡히 작동하는 이탈리아제 사이드카 오토바이 한 대를 발견했다. 철도 선로를 도로 삼아 침목 위를 필사적인 속도로 내달리며, 그들은 밤사이 부상자 두 명을 시디 니스르(Sidi Nisr)까지 후송해 응급처치를 받게 했다. 힐(Hill) 대령은 가슴에 총알 세 발을 맞았고, 화이트록(Whitelock) 대위는 목에 파편 두 조각을 맞았다. 그러나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살아남았다.

성공이 가져온 전략적 성과

이러한 일련의 성공은 중요한 결과를 낳았다. 프랑스가 연합군 진영에 합류하기로 결정하면서 아이젠하워(Eisenhower) 장군은 가장 시급했던 고민거리 하나를 덜게 되었다. 한편, 추격당하던 독일군은 알제리 국경에 최대한 근접한 거점선을 구축하지 못했다. 만약 증원을 받았다면 이러한 배치는 실질적인 방어 둘레를 형성해, 그 뒤에서 병력 재정비가 계속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제1공수연대는 블레이드 포스(Blade Force)가 적의 순찰대나 매복에 방해받지 않고 일련의 합동 작전을 펼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26일, 제1공수연대는 헐(Hull) 대령의 지휘 아래 들어갔다.

블레이드 포스의 핵심, 제17/21 랜서 연대

블레이드 포스의 주력 돌격 부대는 정예 부대인 제17/21 랜서 연대(17th/21st Lancers)였다. 이 연대는 승마 경기장에서든 전장에서든, 말을 타든 기갑 차량을 몰든 '효율에 대한 광신적 집착'이 원칙이었던 부대였다. 연대는 세 개 중대로 구성되었으며, 각 중대는 크루세이더(Crusader) 전차 6대와 발렌타인(Valentine) 전차 12대로 무장하고 있었다.

크루세이더는 장갑과 무장(6파운더포) 면에서 이미 낡았고 기계적 신뢰성도 의심스러운 전차였다. 발렌타인은 더욱 오래된 모델로, 거대하고 느렸으며 2파운더포로 무장이 빈약했다. 각 중대에는 여기에 더해 연막탄이나 대인포탄을 발사하기 위한 3인치 곡사포를 장착한 근접 지원용 크루세이더 2대가 배속되어 있었는데, 이들의 지원은 종종 큰 호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갑 차량들 중 어느 것도 3호·4호 전차(판처 III·IV)와 맞설 능력이 없었고, 특히 75mm 장포신 주포를 장착한 무시무시한 4호 전차 특별형과의 대결은 더욱 감당하기 어려웠다. 당시 튀니지에 배치된 독일 전차 95대 중 3분의 1이 바로 이 전차였다. 그런데 정보부는 블레이드 포스 작전 구역에는 이런 전차가 한 대도 없다고 보고했고, 이에 분노한 헐 대령은 직접 격파된 4호 전차에서 포탄 하나를 회수해 정보 장교의 책상 위에 툭 던져 놓았다고 한다.

11월 25일, 첫 포탄 발사

11월 25일은 제17/21 랜서 연대 세 개 중대에게 의미 있는 날이었다. "T 교차로(T-junction)"에서 재집결하기 위해 선택한 구역이 마침 적에게 점령되어 있었고, 연대는 그렇게 첫 포탄을 발사할 기회를 얻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처음으로, 그리고 기갑 부대로서의 역사상 최초로 쏘아진 포탄이었다. 이후 16일 동안 랜서 연대는 규모는 작지만 그만큼 치열한 전투에 아홉 번 참여했다.

블레이드 포스는 제1공수연대, 제2 랭커셔 연대, 그리고 미국 전차 대대의 증원을 받으며 자체적인 전역을 수행했다. 개별 중대는 보통 단독으로 싸웠고, 때로는 미군이나 공수부대원들과 함께, 두 번은 랭커셔 부대와 함께 전투에 임했다.

마지막 전투와 해체

12월 1일, 제17/21 랜서 연대의 전차는 24대로 줄어들었다. 마지막 대규모 작전은 21일에 벌어졌다. C중대가 "T 교차로"에 대한 적의 강력한 공세를 저지하기 위해 공수부대원과 소총병들의 작전을 지원한 것이었다. 리플스(Rifles) 연대의 켈리(Kelly) 소령이 T.A. 소위를 호출했고, 마지막으로 남은 발렌타인 전차 다섯 대가 적 800미터 이내에 일렬로 전개해 사격을 개시했다. 베사(Besa) 기관총의 집중 사격은 적이 반격을 준비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날의 마지막 전투는 승리로 끝났는데, 이는 두 대의 전차가 이끌었고 그 지휘관은 하사관 두 명이었다.

1942년 12월 14일, 블레이드 포스는 해체되었다. "칼날(blade)"이라는 별명은 값진 것이었다. 승무원들의 전술적 감각과 사수들의 뛰어난 솜씨 덕분에 그들의 전차는 적 전차들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미군들의 용기 덕분이기도 했다. 그들은 랜서 연대원들의 깊은 존경을 받았다. "콕슨 농장(Coxen's farm)" 인근에서 벌어진 수많은 치열한 소규모 전투 중 하나에서, 미군의 작은 12.5톤 스튜어트(Stuart) 전차들이 8대의 판처 전차를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자신들 15대를 잃는 대가를 치르면서 말이다. 순수한 영웅주의였다.

그러나 이렇게 분산된 작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북아프리카 유일의 가동 가능한 연합군 기갑 전력은 곧 잠재력을 소진하고 말았다. 바로 튀니스로의 최종 돌파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었던 시점에 말이다. 그리고 그 돌파 작전은 끔찍한 참패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