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제2차 세계대전, 미국은 브라질 침공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고무 계획'의 실체

브라질이 독일과 손잡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가능성은 미국을 크게 긴장시켰습니다. 대서양 해상 운송로에 미칠 영향과 남미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입니다. 브라질은 추축국에게 잠재적인 거대 전략 기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우려 끝에 미군은 예방적 침공 계획을 수립했는데, 브라질의 주요 생산품인 고무를 딴 '고무 계획(Plan Rubber)'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무지개 계획에서 시작된 구상

사실 이 구상은 처음에 무지개 계획(Rainbow Plan)(1939)으로 등장했습니다. 브라질 북부 지역을 군사적으로 확보하려는 것이었는데, 이곳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사이의 항해 거리를 크게 줄여줄 뿐 아니라 태평양 방면의 경유지이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브라질 정상에 파시스트 성향의 독재자 게툴리우 바르가스(Getúlio Vargas)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낙후된 육군을 현대화할 무기 공급에 미국과 영국이 장애물이 되자(반면 독일은 더 효율적인 공급을 제안했습니다), 바르가스 정부는 1941년 미군의 자국 내 기지 설립을 거부했습니다. 양국 관계가 지난 세기부터 우호적이었고 브라질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연합국 측으로 참전했음에도, 상황은 점점 더 긴장되어 갔습니다.

실제로 당시 브라질 군부는 연합국 지지파(특히 해군과 공군)와 축세력 지지파(육군, 특히 남부 지역)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남부는 국경 방위를 위해 병력 대부분이 집결한 곳이자, 독일계 브라질인 150만 명 중 다수가 거주하는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미국은 브라질 침공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고무 계획 의 실체

진주만 이후 구체화된 침공 계획

이런 가운데 진주만 공격이 일어났고, 특히 우루과이에서 나치 음모가 발각되면서 1941년 12월 21일자 제737호 '브라질 북부 점령 공동 기본 계획', 즉 고무 계획의 작성이 명령되었습니다. 계획에 따르면 해병대가 나탈, 살바도르, 벨렝, 헤시피, 포르탈레자, 페르난두지노롱야의 비행장을 점령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대서양 한가운데 위치한 페르난두지노롱야 섬은 독일 해군이 U보트 기지를 건설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계획에는 전함 USS 텍사스의 포격 지원과 항공모함 USS 레인저 함재기들의 폭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강습에 투입될 병력은 해병대 제1·제5사단과 육군 제9보병사단이었으며, 이들은 버지니아에서 시뮬레이션 훈련까지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모든 면에서 참담했습니다. 작전을 실행한다면 수정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았고, 그대로 진행하면 작전이 실패로 끝날 위험이 컸습니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

이론과 실전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훌륭한 해변을 갖춘 살바도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 지역들은 해변이 너무 좁고 거센 파도가 몰아치거나 암초 지대마저 있어 상륙 작전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 뻔했습니다. 상륙정은 함선에서 해안까지 최대 14km(9마일) 떨어진 곳에서 출발해야 했습니다. 더구나 상륙 지점은 도시, 즉 궁극적인 목표인 공항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여기에 지형 문제도 있었습니다. 도시 지역은 대개 방어하기 유리한 언덕들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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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브라질이 맞설 수 있는 전력이 소규모이고 낡은 수준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전함 2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9척, 잠수함 3척과 기타 소형 함선, 그리고 대부분 구식으로 인접국 아르헨티나와 페루의 항공기보다 열등한 330대의 항공기가 전부였습니다. 지상군 역시 해당 지역에 총 15,700명을 동원할 수 있었고 남부에서 추가 병력을 이송할 수는 있었지만, 열악한 통신망과 광활한 영토 탓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됐습니다.

해안선 곳곳에는 75mm 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산발적이고 불규칙한 방어 시설이 흩어져 있었으나, 페르난두지노롱야 섬에는 겨우 50명의 경비병만 주둔하고 있었습니다(이곳에는 수감자 1,000명을 수용한 감옥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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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로 풀린 위기

결국 고무 계획을 발동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진통 끝에 외교가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1941년 12월, 섬머 웰스 미 국무부 차관보는 바르가스를 설득해 정비공으로 위장한 해병대원들을 브라질 비행장에 배치하고 나치 요원의 침투를 감시·차단하는 데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그 대가로 루스벨트 대통령은 물자, 교관, 현대식 무기의 수출을 승인해 브라질 군부를 확실히 끌어당겼습니다.

이 전략은 성공적이었고 양국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으며, 1942년 5월 상호 방위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관계가 그만큼 가까워지자 미국은 새 동맹국에게 독일과의 국교 단절을 요청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독일은 어설프게도 잠수함으로 브라질 선박 여섯 척을 침몰시켰고, 결국 1942년 8월 22일 브라질은 연합국 측으로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미군 지휘 아래 이탈리아 전선에서 싸운 25,300명 규모의 브라질 원정군(FEB)까지 창설되었습니다.

원정군이 채택한 문장과 모토인 '뱀이 담배를 피운다(The Snake Is Smoking)'는, '브라질이 전쟁에 참전하는 것은 뱀이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다'라고 여겼던 이들에 대한 풍자적 응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