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낭트 칙령과 그 폐지: 프랑스 위그노 박해의 역사

낭트 칙령, 관용의 시작

낭트 칙령(Edict of Nantes)은 1598년 4월 30일 '앙리 대제'라 불리는 프랑스 국왕 앙리 4세가 서명한 종교 관용 칙령입니다. 이 칙령은 프랑스의 개신교도들, 즉 위그노(Huguenots)에게 예배의 자권을 보장하고, 그들을 향한 박해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낭트 칙령은 유럽 역사에서 특정 종교 집단에 공식적으로 신앙의 자유를 인정한 최초의 사례 중 하나로 평가되며, 수십 년간 이어진 종교 전쟁에 일단락을 짓는 의미 있는 조치였습니다.

다시 시작된 박해와 용기병들의 강압

그러나 평화로운 시기가 지나자 위그노들은 다시 박해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루이 13세의 통치기에 이어, '태양왕'으로 알려진 루이 14세 시대에 박해는 한층 심해졌습니다.

1681년부터 1687년까지 이어진 이른바 '드라고나드(Dragonnades)' 기간 동안, 국왕의 용기병(드라군)들은 개신교도들을 추격하여 가톨릭으로 개종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들은 칼뱅주의 신앙을 지닌 가정에 억지로 숙소를 잡아 들어가 주민들을 괴롭혔고, 목사들을 왕국에서 추방했으며, 개신교 예배당을 파괴했습니다. 또한 위그노 아이들을 부모의 비용으로 강제로 교리문답반에 보내거나 수녀원에 넣기도 했습니다.

용기병들은 종교 서적, 특히 성경의 낭독을 금지하고 모든 책을 불태웠습니다. 당시 가톨릭교회에서 사용하는 성경은 라틴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제나 수도사처럼 교육받은 사람들만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위협 속에서도 지켜진 신앙

이러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많은 위그노들은 1682년부터 자신들의 예배를 계속 드리고 성경을 읽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설교자들'과 '예언자들'의 격려에 힘입어 신앙을 지켜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비밀 모임이 발각되었고, 적발된 개신교도들은 체포되거나 심지어 산 채로 화형당하기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왕의 감옥에 유폐되는 형을 받았고, 남성들은 갤리선(노 젓는 배)의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낭트 칙령의 폐지와 퐁텐블로 칙령

마침내 1685년 10월 22일, 루이 14세는 낭트 칙령을 공식적으로 폐지했습니다. 그는 퐁텐블로 칙령(Edict of Fontainebleau)을 반포하여 위그노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을 강요했고, 할아버지인 앙리 4세가 서명했던 낭트 칙령을 무효화한 것입니다.

이로써 1685년 이후 프랑스 왕국에는 공식적으로 더 이상 개신교도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약 20만 명에 달하는 위그노들이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 잉글랜드, 프로이센 등지로 망명했으며, 이는 프랑스 경제와 사회에 큰 타격을 안겼습니다. 종교적 관용으로 시작된 낭트 칙령의 폐지는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장면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