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33일간 뗏목 위에서 살아남은 선원 임푼, 대서양 표류 생존의 기적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인상적인 난파선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인상적인 난파선을 꼽으라면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극적인 상황 덕분에 미군 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USS Indianapolis)'호를, 역사상 최대의 해난 참사였다는 이유로 독일 여객선 '빌헬름 구스틀로프(Wilhelm Gustloff)'호를, 전설적인 인기 덕분에 전함 '비스마르크(Bismarck)'호를, 그리고 800명의 유대인 난민과 함께 침몰한 '스트루마(Struma)'호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희생자 수가 아니라 유일한 생존자의 오디세이로 주목받는 사건이 하나 있다. 바로 133일 동안 뗏목 위에서 표류하며 살아남은 중국인 선원 임푼(Poon Lim)의 이야기다.

"내 기록을 깨는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영웅적인 선원은 자신보다 오래 바다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없다는 기자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사실 그의 기록은 두 번이나 깨졌다. 두 경우 모두 물살에 떠밀려 공해로 밀려나간 어부들의 사례였는데, 한 명은 10개월간, 다른 한 명은 14개월 조금 넘게 실종되어 있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들은 엉성하게 만든 네 판자 위가 아니라 배 위에 있었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달랐다.

133일간 뗏목 위에서 살아남은 선원 임푼, 대서양 표류 생존의 기적

베놀몬드호의 침몰

임푼의 특별한 모험 이전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1918년 중국 하이난 섬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그리고 어빈 조선소(Irvine's Shipbuilding & Dry Dock Co.) 소유의 6,600톤급 영국 무장 상선 'SS 베놀몬드(SS Benlomond)'호에서 요리사로 승선했다는 정도가 전부다. 케이프타운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항해에는 수리남과 네덜란드령 기아나에 들르는 일정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1942년 11월 23일 브라질 연안을 지나던 중 독일 잠수함 U-172가 발사한 두 발의 어뢰에 직격당하고 말았다.

베놀몬드호는 빠르게 가라앉으며 거의 모든 승무원을 함께 끌고 갔다. 총 54명의 선원 중 살아남은 것은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로 뛰어든 임푼뿐이었다(반대편에서 5명이 구명보트에 올랐지만 독일군에게 붙잡혔다). 물속에서 보낸 두어 시간은 좋지 않은 전조였다. 그러나 운명은 그의 편이었다. 수면에 떠다니는 배의 잔해들 사이에서 3제곱미터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정사각형 목재 플랫폼이 나타났고, 그는 그 위로 올라탐으로써 적어도 익사나 저체온증, 상어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

임푼은 부력을 높이는 통 몇 개와 태양을 가릴 차양을 받치는 장대를 묶어 뗏목을 보강했다. 이 차양은 베놀몬드호의 보트를 덮던 천막이었다. 또한 파도 사이에서 앞으로의 나날을 버티는 데 도움이 될 여러 물건들을 건졌다. 손전등, 연막통, 신호탄(비행기가 지나가는 것을 보며 허탈하게 모두 소진해버렸지만) 등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식량이었다. 비스킷 통 8개, 설탕 한 자루, 초콜릿 바 몇 개, 그리고 아마도 가장 소중했던 식수 40리터가 든 큰 병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물과 식량은 겨우 20일 정도를 버틸 분량이었고, 그동안 기다리던 구조는 끝내 오지 않았다. 결국 보급품이 바닥나자 임푼은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구명조끼를 펼쳐 빗물을 모아 목을 축였고, 배터리가 다 되어 쓸모없어진 손전등 케이블은 낚싯바늘로 재탄생했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뗏목 주변을 직접 헤엄쳐야 했는데, 뗏목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밧줄로 몸을 묶었다. 그런 다음 통조림 뚜껑의 날카로운 모서리로 잡은 물고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고기를 햇볕에 말렸다.

폭풍우와 알바트로스, 그리고 상어 사냥

그러나 태양이 언제나 협조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구름이 태양을 가렸고, 그 구름들은 폭풍을 몰고 와 표류자를 괴롭혔다. 처음 겪은 폭풍에서 그는 식수와 물고기 비축분을 모두 잃었다. 폭풍이 잦아든 후 그는 원시적인 본능을 되살려 알바트로스를 잡아 피를 마셔야 했다. 마치 수년 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속 인물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뗏목 밑바닥에서 뜯어온 해조류로 가짜 둥지를 만들어 새를 속였고, 천막 뒤에 숨어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처음 잡은 상어에게서도 같은 방식으로 피를 마셨다. 한번은 물고기 떼를 만나 뗏목을 가득 채울 만큼 잡았지만, 배에 쌓인 내장 냄새 때문에 숨조차 쉬기 어려워 결국 모두 버렸다... 그런데 그것이 수십 마리의 상어를 불러들여 다시 물에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이때 그는 작은 물고기를 잡을 수 없다면 큰 놈을 노리면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배 위에서 상어를 낚는 편이 더 실용적이고 덜 지치기도 했다.

물론 상어는 힘이 세기에 뗏목 못을 적절히 구부려 새 낚싯바늘을 만들어야 했고, 바늘 줄이 손바닥을 다치지 않도록 손에 걸레를 감았다. 상어를 판자 위에 올려놓을 때에도 요동치는 경우가 많아 마무리 일격이 필요했다. 그 큰 병은 충분히 단단해서 그 용도로도 썩 잘 들어맞았다. 이 상황의 아이러니란, 제대로 말린 상어 지느러미를 맛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상어 지느러미는 중국에서 진미로 통하는 음식이니까.

지나쳐 가는 배들, 좌절의 연속

그렇게 며칠, 몇 주, 몇 달이 흘렀다. 처음에는 밧줄에 매듭을 지어 날짜를 세다가, 이후에는 보름달이 뜰 때마다 나무에 홈을 파며 세어야 했다. 그 긴 시간 동안 그 호두껍질 같은 뗏목이 마주친 배는 단 한 척뿐이었다. 한 상선이 그를 발견했지만 구조하지 않고 지나쳤다고 한다. 아마도 그의 아시아인 얼굴을 보고 일본인이라 여겼거나, 독일 잠수함들이 적 함선을 멈춰 세운 뒤 어뢰로 침몰시키기 위해 가짜 난파선을 설치하곤 했기에 미끼로 의심했을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U-보트와도 조우했는데(자신의 불행을 초래한 바로 그 잠수함인지도 모른다), 그 배는 갈매기를 향해 사격 훈련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133일간 뗏목 위에서 살아남은 선원 임푼, 대서양 표류 생존의 기적

그를 발견한 이들은 미 해군 수상기 비행대대 소속이었다. 부표를 띄워 위치를 확인하고 도움을 보내려 한 것이다. 그러나 또다시 날씨가 그를 배반했다. 폭풍 한가운데 부표가 그에게서 멀어져 버렸고, 그는 다시 홀로 남겨졌다. 결국 그를 데려온 것은 거대한 선박도 기관도 아니라, 3명의 어부가 조종하는 초라한 브라질 범선이었다. 1943년 4월 5일, 즉 133일 후였다. 그동안 그는 1,200킬로미터를 표류해 온 상태였다.

구조 이후: 영국 제국 훈장과 새로운 삶

모든 것이 역경만은 아니었다. 해류가 그를 해안가로 밀어준 것이 다행이었다. 3일 후 그는 벨렝(Belem)에 상륙해 병원으로 옮겨져 탈수, 영양실조, 탈진 치료를 받았다. 체중은 9킬로그램이나 빠져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그토록 많은 고난을 겪은 것치고는 양호한 상태였다. 영국 영사관이 귀국 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그는 한 달간 입원했고, 조지 6세 국왕이 직접 대영제국 훈장(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수여했다.

귀환길에는 마이애미와 뉴욕에 들렀다. 미국에 매료된 그는 종전 후 그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중국인 이민 할당량은 이미 마감된 상태였지만 예외가 인정되어 상원의원이 시민권 협상을 벌였고, 그렇게 그는 브루클린에 안주하게 되었다. 그를 집요하게 쫓던 죽음은 1991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결국 그의 특별한 오디세이는 뜻밖에도 긍정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왕립해군조차 그의 창의적인 생존 기술을 해상 생존 매뉴얼에 수록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의 자존심은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출처

Sole Survivor(Ruthanne Lum McCunn) / Sole Survivors of the Sea(James Wise, Jr.) / Sailing's Strangest Tales(John Harding)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