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 속 격리 섬, 그 배경이 된 실존 장소
어느 코믹스 포럼의 회원 다섯 명이 만나기로 한다. 그중 한 명이 기묘한 컬트 그래픽 노블의 원본을 소유하고 있는데, '더 네트워크(The Network)'라 불리는 수수께끼의 조직 역시 이 책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손에 넣으려 한다. 다섯 사람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듯한 적에게서 도망치며 숨어 지내야만 한다. TV 시리즈 유토피아(Utopia)의 기본 줄거리다. 이 작품의 세 번째 에피소드 일부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처음 발생한 곳이라는 이유로 격리된 한 섬을 배경으로 하는데, 바로 이 장면들이 그루이나드(Gruinard)라는 외딴 스코틀랜드 섬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사람이 살지 않게 된 작은 섬
그루이나드는 길이 약 2km, 폭 1km 정도의 작은 타원형 섬으로, 게일록(Gairloch)과 울라풀(Ullapool) 사이 같은 이름의 만에 자리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북서부 해안에서 1km 거리에 있지만 헤브리데스 제도에는 속하지 않는다. 16세기에 스코틀랜드 서부 제도 기행(Description of the Western Isles of Scotland)을 출간해 이 지역 여행기를 기록한 성직자 도널드 먼로(Donald Munro)에 따르면, 이 섬은 맥켄지(MacKenzie) 가문의 소유였다. 맥켄지 씨족은 중세 시대 로버트 더 브루스가 잉글랜드에 맞서 싸울 때 이를 지원했고, 300년 뒤에는 자코바이트 운동에도 힘을 보태었다.
그루이나드는 사람이 살기 적합한 땅이 아니었다. 1881년 기록에 주민이 겨우 여섯 명 정도 등장할 뿐이며, 1920년대부터 삼림 벌채와 함께 완전한 무인도가 되었다. 그런데 이 조건은 한쪽에서 보면 나쁘지만 다른 쪽에서 보면 나쁘지 않았다. 규모가 제한된 무인도야말로 세균학 실험을 하기에 좋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작전명 '베지테리언'의 음흉한 진실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한복판에서 영국은 그루이나드 섬을 '베지테리언 작전(Operation Vegetarian)'의 예행연습 장소로 선택했다. 이 계획은 탄저균(Bacillus anthracis) 포자에 감염시킨 일종의 가축용 케이크를 독일 전역의 목초지에 뿌린다는 것이었다. 탄저병은 피부에만 감염되면 비교적 가볍지만 호흡기로 침투하면 치명적이다. 주로 섭취를 통해 전염되기 때문에 오염된 고기가 사람에게 전달되면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낳거나, 최악의 경우 가축이 몰살해 독일 전체를 굶주림에 빠뜨릴 수 있었다.
'베지테리언(채식주의자) 작전'이라는 이름은 이처럼 기괴한 블랙 코미디였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치 정권이 영국에 대해 같은 짓을 할 경우에 대비한 극단적인 대응책이었다. 적이 그런 무기를 실험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온 것이다. 덕분에 당시까지 영국에 알려지지 않았던 사린 가스의 존재도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섬에서 벌어진 탄저균 실험
결국 베지테리언 작전은 실행되지 않았고, 1944년부터 제작된 500만 개의 치명적인 케이크는 전쟁이 끝난 뒤 소각로에서 파기되었다. 하지만 그루이나드 섬에서는 실험이 실제로 진행되었으며, 다음 해에는 웨일스 고워 반도에서도 유사한 실험이 이루어졌다. 실험을 주관한 곳은 솔즈베리(잉글랜드)에 위치한 영국 국방부 산하 포튼 다운(Porton Down) 생물학 부서로, 과학자 폴 필즈(Paul Fildes)의 지휘 아래 화학·생물 무기(탄저균, 보툴리눔 독소 등)를 전문으로 연구하던 곳이었다.
올리버 그레이엄 서턴 경(Sir Oliver Graham Sutton)이 이끄는 50명 규모의 팀은 섬 소유주의 허가를 받아 실험을 시작했다. 양 80마리를 섬으로 몰아 넣고 여러 구역으로 나눈 뒤, 각 구역에서 '볼룸 14578(Vollum 14578)'이라 불리는 극도로 독성이 강한 변종의 포자가 담긴 폭탄을 폭발시켰다. 이 변종의 이름은 균주를 공급한 옥스퍼드 대학교 생물학자 R. L. 볼룸(R. L. Vollum)에서 따온 것이다. 양들은 차례차례 죽어갔고(전 과정이 16mm 컬러 필름으로 촬영되었다), 이로써 베지테리언 작전의 실현 가능성이 입증되었다.
4년이 아닌 40년, 이어진 격리 생활
문제는 그 이후였다. 양들의 사체를 소각하고 제독 작업을 진행했음에도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하면서, 이토록 오염된 장소가 오랫동안 거주 불가능한 상태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결국 섬은 소유주에게 반환될 수 없었고 정부가 매입하게 되었다. 단, 전문가들이 안전하다고 판단하면 상징적인 값인 500파운드에 돌려주겠다는 약속과 함께였다. 그러나 전후 재정 형편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고, 그루이나드는 4십 년간 봉쇄되었다. 매년 실시된 토양 검사에서는 탄저균이 여전히 검출되고 있었다.
'다크 하베스트 코만도', 기이한 에필로그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1981년에 등장한 기이한 에필로그였다. '스코틀랜드 시민군 다크 하베스트 코만도(Dark Harvest Commando of the Scottish Citizen Army)', 바로 이 이름으로 서명된 메시지가 여러 신문사에 동시에 전송되었다. 이 단체는 정부에 섬의 제독 작업을 즉각 완료할 것을 요구하면서, 두 대학의 미생물학자 그룹이 현지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140kg의 토양을 채취했으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여러 곳에 샘플을 남겨두겠다고 통보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바로 그날, 포튼 다운 입구에서 토양 샘플이 든 꾸러미가 발견되었고, 분석 결과 탄저균이 확인되었다. 며칠 뒤에는 집권 보수당이 연례 대회를 개최하던 블랙풀에서도 같은 위협이 반복되었다. 이번에는 병원균이 검출되지 않았지만, 해당 토양이 앞선 샘플과 동일한 외관을 지녀 같은 출신임을 짐작하게 했다.
1986년, 마침내 시작된 제독 작업
그럼에도 정부는 굴복하지 않았다. 적어도 당장은 그렇지 않았다. 그루이나드의 제독 작업이 시작된 것은 1986년에 이르러서였다. 해수에 희석한 포름알데히드(메틸 알코올 유도체) 280톤을 섬 전역에 살포하고, 오염이 심한 지역에서는 표층 토양을 걷어냈다. 약 196헥타르가 처리되었고, 새로 데려온 양 떼가 건강에 이상 없이 생존하면서 비로소 섬이 깨끗해졌음이 입증되었다.
그리하여 1990년 4월 24일 봉쇄가 공식적으로 해제되었고, 나흘 뒤 약속대로 이미 세상을 떠난 소유주의 상속인들은 500파운드를 받고 자신들의 재산을 되찾았다. 그리고 결국 진짜 피해자는 1942년 실험용 기니피그가 되었던 그 양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