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는 1972년 유고슬라비아의 승무원 베스나 불로비치(Vesna Vulović)가 10,000미터 상공에서 추락한 항공기에서 살아남아 기네스북에 오른 전무후무한 사례를 다룬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유일한 사례는 아닙니다. 1년 전인 1971년에는 독일의 10대 소녀 율리아네 쾨프케(Juliane Koepcke)가 페루 아마존 상공 3,000미터에서 추락하고도 기적적으로 생존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의 대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났습니다.
전쟁의 가장 흥미로운 측면 중 하나는 일화입니다. 당연히 더 최근이고 장기적인 전쟁일수록 기록이 잘 남아 있으며, 우리가 아는 기묘한 이야기들도 더 많습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책들 중에는 이 특정 주제만 다룬 책들도 여럿 출간되었으며, 우리도 믿을 수 없는 사고에서 살아남은 비행사들의 희귀한 사례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수많은 출격과 빈번한 격추가 있었기에 그런 사례도 꽤 많습니다.
이 모든 사례에는 주인공들의 기적적인 생존을 설명하는 공통 요소가 있습니다. 추락 시 나무가 몸을 완충해주거나, 지면보다 훨씬 부드러운 두꺼운 눈 쌓인 층이 있었던 점 등입니다(캐서린 베리지가 물리학적 관점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운이 결정적인 요소였습니다. 같은 승무원들은 종종 목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1944년 1,350미터 상공의 눈 덮인 루르 분지 상공에서 공중 폭발한 호주 왕립 공군(RAAF)의 핸들리 페이지 핼리팩스(Handley Page Halifax) 폭격기에서 단 하나의 낙하산으로 두 명이 살아남은 사례(호주 중위 조 허먼과 비행 장교 존 비바시)는 예외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사례들이 더 있습니다.
니콜라스 스티븐 알케마데(Nicholas Stephen Alkemade)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는 아브로 683 랭커스터(Avro 683 Lancaster)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42년 실전 배치된 이 4발 중폭격기는 그 특성상 저고도 야간 임무에 투입되어 종전까지 약 156,000회의 출격 기록을 세웠습니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두 동료의 사례 불과 한 달 전, 랭커스터의 후방 기관총 사수였던 니콜라스 스티븐 알케마데 하사가 겪은 놀라운 생존담이 기록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1922년 잉글랜드 레스터셔 로프버러(Loughborough)에서 태어난 그는 RAF 제115 비행대대 소속 랭커스터의 후방 기관총 사수로 복무했습니다. 1944년 3월 14일 밤, 'S for Sugar'(당시 영국식 무전 표기법으로 'S'를 뜻하며, 한국어로 옮기면 '사탕의 S' 정도가 될 것입니다)라는 별명의 이 항공기는 300대의 항공기가 베를린을 공습하고 돌아오던 중,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슈말렌베르크(Schmallenberg) 상공에서 유니커스 Ju 88 야간 전투기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다목적기로 다양한 임무에 투입되던 Ju 88은 당시 요격 임무를 수행 중이었습니다.
랭커스터는 화염에 휩싸이며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습니다. 승무원들은 낙하산으로 탈출했지만, 알케마데가 탈출하려던 순간 그의 낙하산이 화재에 휩쓸려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5,500미터 고도에서 그는 끔찍한 선택에 직면했습니다: 불타서 죽느냐, 아니면 뛰어내려 더 빨리 죽느냐. 불길이 옷과 피부를 태우기 시작하자 그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옳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유연한 전나무 숲의 나무관과 50센티미터의 눈이 그를 구해주었습니다.
타박상, 화상, 오른쪽 무릎 탈구 정도의 부상만 입었을 뿐, 그와 함께 탈출하지 못한 네 명의 승무원은 항공기와 함께 추락해 화염 속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침착하게 담배를 피우며, 휘파람을 불어 구조대를 불렀습니다. 독일 영토에 떨어진 그는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간첩으로 취급받았습니다. 하지만 심문 끝에 랭커스터의 잔해가 그의 믿기 힘든 이야기를 입증해주자, 그는 단순 전쟁포로(프랑크푸르트의 덜라그 루프트(Dulag Luft) 수용소 수감)로 분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모험을 증명하는 공식 문서까지 발급받았습니다.
1945년 5월 송환된 그는 종전 후 화학 산업 분야에서 일했는데(이곳에서도 처음엔 치명적이라 여겨진 두 번의 사고를 당하고도 무사히 살아남았습니다), 이후 전쟁 영웅이나 특수 생존 사례를 다룬 여러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1987년 세상을 떠났는데, 불과 1년 전 자신과 비슷한 시련을 겪었던 또 다른 비행사 이반 치소프(Ivan Chisov) 중위가 사망한 뒤였습니다.
이반 미하일로비치 치소프(Ivan Mikhailovich Chisov)
이반 미하일로비치 치소프는 1916년 우크라이나 보그다노프카(Bogdanovka)에서 태어났습니다. 대조국전쟁(소련이 나치 독일과의 동부 전선 전투를 부르는 명칭) 기간 중 그는 보옌노-보즈두시니 실리(소련 공군)에 배속되어 일류신 Il-4(Ilyushin Il-4) 중폭격기 탑승원으로 근무했습니다. 이 기종은 중형이지만 장거리 폭격이 가능했으며, 총 5,256대가 생산되었습니다. 1942년 1월, 그는 이 기체를 타고 비행하던 중 메서슈미트 Bf 109(Messerschmitt Bf 109) 여러 대의 공격을 받아 피격당했습니다. Bf 109는 독일 공군(루프트바페) 전투기 전력의 주력이었습니다.
치소프는 낙하산을 착용하고 뛰어내렸습니다. 정확한 고도는 불분명합니다. 끝까지 기체를 살리려다 500미터 고도에서 겨우 탈출한 그의 동료 니콜라이 주간(Nikolai Zhugan)은 치소프가 약 7,000미터 고도에서 뛰어내렸다고 증언했습니다. 어쨌든 그는 즉시 낙하산을 펴지 않았습니다. 공중전이 한창인 상황에서 낙하산을 펴면 독일 조종사들의 손쉬운 표적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공중전 고도를 벗어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변수가 있었습니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산소 부족으로 의식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는 낙하산을 펼치지 못한 채 시속 190~240km의 엄청난 속도로 눈 덮인 협곡 가장자리에 부딪혔고, 눈 위를 굴러 내려가다 눈이 그를 멈춰 세웠습니다. 마침 인근에서 작전 중이던 기병 부대가 공중전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들은 시신을 수습하러 왔다가 놀랍게도 의식을 차린 살아있는 전우를 발견했습니다.
온몸이 멍들고 척추 손상과 골반 골절 등 중상을 입었습니다. 사실 그는 위중한 상태였고, 이후 3개월간 병원에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은 끝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70회 이상의 출격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었던 치소프는 겁먹지 않고 다시 전투 임무 복귀를 요청했지만, 몸 상태가 허락하지 않아 결국 비행 교관으로 보직이 변경되었습니다. 종전 후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예편하여 선전 업무에 종사했습니다.
앨런 유진 매지(Alan Eugene Magee)
마지막으로 알려진 비슷한 사례의 주인공은 미국인입니다. 영국인과 소련인에 이어, 치소프의 사례로부터 1년 뒤인 1943년 1월, 앨런 유진 매지가 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그는 눈이 없어 추락 충격을 완화해줄 것이 없었음에도 가장 심각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84세까지 장수하며 세 명 중 가장 오래 살았습니다.
1919년 뉴저지주 플레인필드(Plainfield)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1957년 에드 게인(Ed Gein)이라는 연쇄 살인마의 소굴로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평범한 마을이었습니다. 게인은 작가 로버트 블로크(Robert Bloch)와 훗날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의 영화 사이코(Psycho)의 노먼 베이츠(Norman Bates) 캐릭터에 영감을 준 인물입니다. 마을 주민들은 아마 자고향이 비행사의 모험으로 기억되길 바랐을 것입니다.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참전하자마자 그는 자원입대했습니다. 1941년부터 1947년까지 미 육군 항공대(USAAF, United States Army Air Forces) 소속으로 B-17 폭격기의 승무원으로 배속되었습니다. '하늘의 요새(Flying Fortress)'라는 별명으로 불린 이 4발 중폭격기는 1935년부터 보잉(Boeing)에서 생산되어 유럽과 태평양 전선에서 활약했으며, 총 12,677대가 생산되었습니다(일부는 영국 공군에 제공). 매지는 하부 포탑 기관총 사수를 맡았습니다.
1943년 1월 3일, 'Snap! Crackle! Pop!'(기체 동체에 그려진 세 명의 요정(켈로그 크리스피즈 시리얼 마스코트)이 폭탄을 타고 있는 재미있는 그림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별명의 이 B-17은 제360 폭격 비행대대 소속으로 7번째 임무를 수행 중이었습니다. 목표는 독일의 중요한 잠수함 기지가 있던 프랑스 생나제르(Saint-Nazaire)였으며, 주간 폭격이 이루어졌습니다. 임무 중 고사포탄이 오른쪽 날개를 직격하여 조종사가 통제력을 잃고 기체는 자전하며 추락했습니다. 매지는 부상을 입었지만 포탑에서 나와 탈출을 준비했습니다.
그때 그는 공포에 질렸습니다. 자신의 낙하산이 파편에 맞아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선택은 잔혹했습니다: 기체에 남아 추락사하느냐, 낙하산 없이 뛰어내리느냐. 매지는 후자를 택했고, 치소프처럼 산소 부족으로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의 경우 의식을 잃은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습니다.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죽을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6,700미터 고도에서 추락했음에도, 종착점에는 눈이 아닌 생나제르 역(Gare Saint-Nazaire)의 유리 지붕이 있었습니다.
현재 1995년 개장한 현대식 역사(驛舍)와 달리, 당시 역사는 19세기 건물이었으며 잠수함 부두 옆이라는 이유로 폭격으로 거의 파괴되었습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양옆의 석조 건물 중앙에 긴 유리 지붕으로 연결된 당시 시대의 전형적인 구조였습니다. 단단하지만 깨지기 쉬운 이 유리가 비행사의 낙하 충격을 완화해주어, 그를 승강장 바닥으로 덜 폭력적으로 떨어뜨렸습니다. 물론 추락 충격은 끔찍했고, 매지의 신체에 큰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독일군은 즉시 상황을 파악하고 그를 병원으로 후송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골절, 폐와 신장 천공, 비중격과 눈의 심각한 손상, 반절단된 팔 등 추락만으로도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습니다. 거기에 28발의 파편상까지 더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의사들은 그를 살려냈고, 긴 회복 기간은 전쟁포로 생활을 견디게 해주는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1945년 5월 석방된 그는 공군 메달(1942년 제정, 공로나 영웅적 행위를 세운 비행사에게 수여)과 퍼플 하트 훈장(미국 최고(最古)의 훈장으로, 전투 중 부상자나 전사자에게 대통령 명의로 수여)을 받았습니다. 그날 임무에서만 7대가 격추되고 48대가 피격되어 간신히 귀환하는 등 75명의 전사자가 발생했기에, 그날 많은 훈장이 수여되었습니다.
치소프처럼 그도 비행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종전 후 조종사 면허를 취득, 1979년 은퇴할 때까지 항공 분야에서 일했습니다. 1993년 생나제르는 폭격 50주년을 기념하며 매지와 그의 B-17 전우들을 기리는 기념비를 제막하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1943년 저승사자를 피해 간 사나이는 2003년, 신부전과 뇌졸중의 합병증으로 결국 그녀와 화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