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완벽하게 계산된 결말: 튀니스 함락 작전의 전말

완벽하게 계산된 결말: 튀니스 함락 작전의 전말

1943년 5월, 북아프리카 전역의 승패를 가를 마지막 공세가 시작되었다. 연합군은 메제르다(Medjerda) 계곡을 따라 추축국의 심장부인 튀니스를 향해 진격할 계획을 세웠고, 그 첫 단추는 정교한 예비 작전에서 시작되었다.

예비 공격과 D-Day의 새벽

5월 5일 오후 5시, 제5군단 우익 사단인 제1보병사단은 강력한 공중 지원을 등에 업고 제벨부아우카즈(Djebel-bou-Aoukaz) 고지에 대한 예비 공격을 개시했다. 이들은 저녁 무렵 고지를 점령해 제9군단 공격의 좌측 측면 안전을 확보했으며, 제9군단 소속 사단들은 밤사이 메제즈(Medjez) 동쪽과 남동쪽의 출발 기지로 이동을 마쳤다.

그리고 5월 6일, D-Day가 밝았다. 새벽 3시 30분, 달 없는 별빛 아래 갑작스럽게 수천 발의 섬광이 하늘을 찢었고, 적 진지에 준비된 사격을 퍼붓는 400문의 대포 포성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영국군과 인도군은 좁은 전선에 나란히 모습을 드러낸 뒤 '포화의 아치' 아래에서 전진을 개시했다.

동이 트자 연합군 공군이 하늘을 장악했다. 무려 2,000소티에 달하는 이번 항공 작전은 당시까지 실행된 것 중 가장 대규모의 공중 지원이었다.

완전한 기습, 압도적인 돌파

독일군의 경악은 컸다. 적은 분명 자신들의 진지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견고하게 요새화된 메제르다 일대에 대한 공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전 11시, 보병은 출발선에서 약 8킬로미터 떨어진 모든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제6기갑사단과 제7기갑사단은 즉시 돌파구를 통과해 주요 도로 양옆으로 튀니스를 향해 질주했다. 침투 속도가 너무 빠르고 깊었던 탓에 조직적인 저항조차 만나지 못했다. 제15기갑사단 소속의 몇몇 전차 부대가 급히 달려와 맞섰으나 순식간에 밀려났다. 전진을 늦춘 것은 대전차포로 전용된 88mm 대공포뿐이었지만, 영국 기갑부대의 돌진 기세는 워낙 강력해 푸르나(Fourna)를 점령한 뒤 해 질 녘에는 튀니스에서 불과 20킬로미터 떨어진 마시코(Massicault)에 도달했다.

튀니스 입성

다음 날 아침인 5월 7일, 튀니스 도로 남쪽으로 진격하던 제6기갑사단은 소수의 판처 전차에게 발목을 잡혔으나 곧 위기를 벗어났다. 한편 좌익의 제7기갑사단은 오전 8시 30분 생시프리앙(Saint-Cyprien)을 점령한 뒤 곧바로 튀니스 서쪽 입구인 바르도(Bardo) 교차로로 진격했다.

마침내 오후 3시, 더비셔 요먼리(Derbyshire Yeomanry)와 제1후사르연대(1st Hussars)의 전차들이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시민들 속에서 튀니스 수도에 입성했다. 잘 계산된 예비 공격과 압도적인 화력, 그리고 과감한 기갑 돌파가 함께 만들어낸 완벽한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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