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제2차 세계대전 독일군의 구조 부표 '레퉁스보이에(Rettungsboje)': 영국 해협에 뜬 조종사들의 생명줄

광활한 바다 위에서 실종된 조난자를 찾는 일은 그야말로 어렵고 지친 작업이다. 수색 범위를 크게 좁히지 못하면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마침내 발견했을 때는 저체온증이나 탈수 등으로 이미 생명을 잃은 뒤일 때가 많다. 전시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 조난자가 부상을 입었을 가능성까지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본토 항공전'이라 불린 공중전에서 영국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맞서 싸웠던 독일과 영국 조종사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러한 참상을 덜기 위해 고안된 장치가 바로 구조용 부표 레퉁스보이에(Rettungsboje)다.

스코틀랜드 박물관에 남아 있는 영국식 구조 부표 ASR-10

스코틀랜드 서부 연안의 소도시 어빈(Irvine)을 거치는 여행길이라면, 에드거 앨런 포나 로버트 번스 같은 문호가 머물렀던 매력적인 중세 도시를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스코티시 마리타임 박물관(Scottish Maritime Museum)도 방문할 수 있다. 인근 덤버턴(Dumbarton)에 일부 시설이 분산되어 있는 이 해양 박물관은 옛 조선소 자리에 세워졌으며, 소장품 대부분은 항만 기계와 19~20세기 선박 등 산업 유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곳에는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 기묘한 배 한 척이 있다.

그것은 바로 Air-Sea Rescue Float의 약칭인 ASR-10, 즉 영국 엔지니어들이 개발한 구조 부표다. 총 16척이 건조되어 영국 해협을 건너 유럽 대륙의 적진을 폭격하러 가던 비행 편대의 주요 항로를 따라 배치되었다. 이 장치는 추락한 조종사들이 구조될 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비교적 쾌적한 피난처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구급함, 식수, 식량, 간이 주방, 난로, 의복, 담요 등 맞춤형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무전기도 설치되어 있었고 6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도 마련되어 있었다.

퇴역 선박의 강선 선체를 개조해 만든 이 부표들은 여섯 명이 누울 수 있는 침대를 수용할 수 있었고, 형편이 여의치 않은 상황 속에서도 사용자들에게 나름의 안락함을 제공했다. 조난자는 계단이나 경사진 선미의 격자를 타고 어려움 없이 올라탈 수 있었다. 이 방추형 외관 덕분에 ASR-10은 종전 후 요트로 개조되어 재활용되기도 했다. 이후 전쟁 물자가 유산으로서 재평가되면서 이 장치는 복원 작업을 거쳐 박물관에 전시되었는데, 노란색과 빨간색이 교차하는 인상적인 도색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제2차 세계대전 독일군의 구조 부표  레퉁스보이에(Rettungsboje) : 영국 해협에 뜬 조종사들의 생명줄

발상의 원조는 루프트바페였다

그러나 두 나라를 가르는 해상 지대에 구조 거점을 만들고 배치한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낸 것은 영국이 아니라 제3제국의 공군, 즉 루프트바페(Luftwaffe)였다. 앞서 언급한 영국 본토 항공전은 독일군의 폭격 작전에 맞서 영국 왕립공군(RAF)이 벌인 저항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크릭스마리네(Kriegsmarine)가 왕립해군에 비해 열세였던 만큼, 히틀러는 영국 본토 침공 작전인 '바다사자 작전(Operation Sea Lion)'을 성공시키기 위해 제공권 확보가 절실했다. 전투는 예상보다 길게 1940년 7월부터 10월까지 넉 달간 이어졌고, 그 결과 양측의 손실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컸다.

루프트바페는 약 2,000대의 항공기를 잃었고, 영국군의 손실도 1,500여 대에 달했다. 이는 양측에서 수백 명의 장병이 목숨을 잃었음을 의미하며, 또 다른 많은 이들이 격추당하거나 불시착한 끝에 바다 한가운데서 구조를 기다리며 표류하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 전투 지역에서 벌어지는 구조 작전은 본래의 어려움에 더해 훨씬 위험했다. 결국 1940년 9월, 독일 항공부(RLM, Reichsluftfahrtministerium)는 실종되었지만 아직 살아 있는 조종사와 승무원들을 위한 비상 대책 설계를 기술국(T-Amt, Technisches Amt)에 위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독일군의 구조 부표  레퉁스보이에(Rettungsboje) : 영국 해협에 뜬 조종사들의 생명줄

우데트-보이에(Udet-Boje): 50개의 부표가 영국 해협에 뜨다

T-Amt를 이끌었던 이는 상급대장 에른스트 우데트(Ernst Udet)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에이스 파일럿 출신인 그는 순수 행정직이라는 자신의 직책을 몹시 싫어해 알코올 중독에 빠지다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급강하 폭격 전술과 그 상징적인 항공기인 유명한 슈투카(Stuka)의 개발을 이끌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그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레퉁스보이에(Rettungsboje), 즉 구조 부표를 내놓았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 '우데트-보이에(Udet-Boje)'라고 불렀다. 이후 두 달 동안 50개(나중에 그만큼 더 추가됨)가 건조되어 영국 해협 곳곳에 배치되었으며, 그중 2개는 영국 함정에 끌려가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 개념은 훗날 영국이 만든 것보다 단순했고, 이름에 더 충실한 것이었다. 별도의 선체 없이 13제곱미터 크기의 사각형 또는 육각형 부유 캡슐에 가로 4미터, 세로 2미터 규모의 격실이 있어 4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상부에는 2미터 높이의 포탑 모양 구조물이 돛대와 안테나로 이어졌고, 거의 1킬로미터 밖에서도 보이는 흰색과 빨간색 빛 신호, 무전 SOS 음향 신호, 연기 신호를 발신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독일군의 구조 부표  레퉁스보이에(Rettungsboje) : 영국 해협에 뜬 조종사들의 생명줄

파도 사이로 부표의 눈에 띄는 색깔(노란색이며, ASR과 마찬가지지만 적십자 마크가 추가되었다)을 발견한 조난자는 헤엄쳐 접근할 수 있었다. 부표에 매달린 100미터 길이의 부표 테이프로 해류의 방향을 확인하고, 난간을 잡고 올라선 뒤 출입문을 열면 고생의 끝이 시작되었다. 내부에는 구급 용품, 두 벌씩 포개진 2단 침대, 마른 옷, 난로, 신호탄 총, 송신기, 담배, 코냑, 심심풀이용 보드게임, 총알 구멍을 막을 도구, 누수 시 사용할 물펌프까지 갖춰져 있었다.

25리터의 식수를 포함한 비상 물자는 4일간 버틸 수 있었고, 구조대원들이 보충해 주어야 했다. 다행히 부표들이 고정된 위치에 닻으로 정박되어 있었기 때문에 매일 점검이 가능했다. 도착한 배나 수륙양용비행기에 쉽게 탑승할 수 있도록 부풀릴 수 있는 구명보트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덕분에 많은 비행 요원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실제로 레퉁스보이에는 그 용도를 넘어 독일 해안의 갯벌에 갇힌 갯벌 탐방객을 위한 구조 비컨 레퉁스바케(Rettungsbake)와 선박의 덮개형 구명 뗏목에 영감을 주며 그 명맥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