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아편전쟁: 19세기 중국을 무너뜨린 서구 열강의 침략

아편전쟁이란?

아편전쟁(鴉片戰爭)은 19세기 중국에서 일어난 두 차례의 무력 충돌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이 전쟁은 1644년부터 1912년까지 중국을 통치한 청나라와 서구 열강 사이에서 벌어졌습니다.

제1차 아편전쟁은 1839년부터 1842년까지 청나라와 영국 간에 벌어졌으며, 제2차 아편전쟁은 1856년부터 1860년까지 청나라, 영국, 그리고 프랑스가 얽힌 전쟁이었습니다.

두 전쟁 모두 서구 세력이 승리하면서, 열강들은 중국 영토 내에서 상업적 특권을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아편전쟁은 일련의 불평등 조약 체결과 열강의 잇따른 침략으로 이어졌고, 궁극적으로 20세기 초 청나라 멸망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원인

아편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중국의 아편 무역 단속 시도였습니다. 단속의 대상은 18세기부터 인도산 아편을 중국으로 밀수출해 온 외국 상인들, 특히 영국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1820년대 이후 아편 거래는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문제는 중국 내부로 흘러든 마약 중독이 만연해져 심각한 사회적·경제적 폐해를 끼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마약 거래를 근절하고 사회 질서를 회복하고자 1839년 3월, 중국 정부는 영국 상인들이 보유하던 아편 2만 상자(약 1,400톤)를 몰수하여 소각했습니다.

이 조치에 반발한 영국 상인들은 중국인 촌민 한 명을 살해했으면서도 정작 중국 법정에 출두하기를 거부했고, 이 시기 양측의 적대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결국 영국 군함은 홍콩 인근 주강(펄 리버)에 설치된 중국의 해상 봉쇄선을 파괴했습니다.

주요 사건

중국의 저항에 대응하여 영국 정부는 1840년 원정군을 파견해 광저우(광둥)를 공격하고 점령했습니다. 1842년에는 중국군이 의미 있는 반격에 성공하기도 했으나, 같은 해 8월 말 영국군이 난징을 함락시켰습니다.

그해 체결된 난징조약(南京條約)은 중국이 영국에 배상금을 지불하고 홍콩을 할양하며 자유무역항을 추가로 개방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상업적 특혜를 넘어, 1843년 10월 8일 체결된 후먼조약(虎門條約)은 영국인에게 자국 법원에서만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치외법권'을 부여했습니다. 이러한 특권은 곧 다른 열강들도 하나둘 요구하게 됩니다.

제2차 아편전쟁

제2차 아편전쟁은 1856년부터 1860년까지 진행되었으며, 영국의 압제에 맞선 중국의 저항이 배경이 되었습니다. 영국은 이 시기 중국 내에서 자신들의 권익 확대를 추진해 왔는데, 1856년 중국 관리들이 영국 선박(애로호)에 올라타 중국인 선원 여럿을 체포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전쟁의 도화선이 붙었습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영국 군함이 광저우를 포격했고, 양국 군대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중국인들은 외국인들의 공장과 창고를 불태웠고,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한편 프랑스는 1856년 초 프랑스 선교사가 살해당한 사건을 계기로 영국에 지원군을 파견하기로 결정합니다.

영·프 연합군의 군사 작전은 순조로웠고, 1858년 연합군은 톈진에 입성해 중국에게 톈진조약(天津條約) 체결을 강요했습니다. 이 조약은 여러 항구의 개방과 자유무역 허용, 그리고 중국 영토 내 기독교 선교사의 활동 자유를 골자로 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해 말 상하이에서는 아편 수입이 공식적으로 허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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