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족의 대이동과 로마 제국의 해체
4~5세기에 걸친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로마 제국의 해체 과정을 결정적으로 앞당겼습니다. 게르만족이 점령한 영토에서는 게르만 문화와 라틴(로마) 문화가 융합된 새로운 왕국들이 속속 등장했으며, 이러한 변화는 이후 중세 사회의 기본 틀을 형성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게르만족은 누구였나?
게르만족은 로마인들과 같은 언어와 풍습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로마인들에게 멸시 어린 뜻을 담아 '야만인(barbaroi)'이라 불렸습니다. 이 명칭은 그들이 거주하던 지역의 이름인 게르마니아(Germania)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기원후 2세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통치 시기부터 로마는 제국 국경에서 게르만족과 끊임없이 충돌해 왔습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쇠퇴의 길에 접어들면서 게르만족의 남하를 막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제국은 무력 저항 대신 게르만족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게르만 전사들이 로마 군대에 편입되었고, 로마 원로원에서 요직을 차지한 게르만인도 등장했습니다. 그러다 5세기부터는 게르만족의 이주가 더 이상 점진적인 이동이 아니라 대규모의 폭력을 수반하는 참혹한 침공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대이동의 원인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몇 가지 단서를 통해 그 배경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일부 학자들은 인구 증가를 원인으로 꼽습니다. 늘어난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게르만족은 더 비옥한 땅을 찾아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기후 변화 가설이 있습니다. 기온이 크게 하강하면서 게르만족의 생존 기반이 위협받았고, 이들이 보다 나은 환경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셋째, 역사학자들이 비교적 의견을 모으는 요인은 바로 아시아에서 건너온 훈족(Hun)의 등장입니다. 훈족의 남하는 게르만족 사이에 공포와 절망을 안겼고, 살길을 찾은 게르만 부족들은 로마 제국의 국경에 점점 더 강한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훈족의 밀려듦은 오스트리고트족, 비시고트족, 알란족, 부르군트족, 수에비족, 반달족 등 수많은 부족들을 로마 영토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제국의 허가를 받아 망명했지만, 다른 일부는 무력으로 국경을 돌파했습니다. 마침내 서기 476년, 헐룰리족이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를 폐위시키면서 로마 제국의 붕괴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대이동의 결과

▲ 서기 476년 로마 제국 붕괴 이후 게르만 왕국들의 분포를 보여주는 지도
게르만족의 대규모 이주는 서로마 제국의 해체로 이어졌습니다. 로마에 집중되어 있던 중앙 권력은 소멸했고, 그 땅은 무력으로 승리한 게르만족의 것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유럽의 농촌화(ruralization)입니다. 식량 생산 거점이 공격받고 교역로가 끊기면서 대도시로의 물자 공급이 두절되었고, 로마의 대도시들은 기근에 시달렸습니다. 여기에 전염병의 창궐과 게르만족의 약탈까지 겹치자 사람들은 폭력을 피하고 식량 생산지 인근에 머물기 위해 농촌으로 떠났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유럽 전체의 인구 감소로도 이어졌습니다.
한편 게르만족의 정착은 새로운 왕국들, 즉 프랑크 왕국, 비시고트 왕국, 오스트리고트 왕국 등의 탄생을 낳았습니다. 라틴 문화와 게르만 문화의 융합은 서유럽 사회의 문화적 뿌리를 형성했으며, 이 시기에 만들어진 사회 구조는 훗날 봉건제 시대 유럽의 특징을 규정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글: 다니엘 네베스(Daniel Neves), 역사학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