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유다, 배신자인가 아니면 배신당한 자인가?

유다, 배신자인가 아니면 배신당한 자인가?

Rainer Sousa 지음

오늘날에도 많은 학자들이 성경 본문의 서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다양한 관점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의도가 어떠하든, 때때로 발표되는 새로운 연구들은 성경을 채우고 있는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수천 명의 기독교 신자들의 신앙의 토대가 되는 내용들의 타당성까지 의문시합니다.

'유다 복음서'의 번역과 파문 일으킨 주장

2006년, 스위스 메세나스 재단(Fundação Mecenas)의 지원을 받은 신학자·언어학자·역사가로 구성된 연구팀이 이른바 "유다 복음서"의 번역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작업을 마친 뒤 그들은 기사를 발표하며, 유다가 배신자라는 통념은 실제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오히려 유다는 예수를 인류의 구원자로 만드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해석: 음모에 휘말린 헌신적 종자

이 새로운 관점에 따르면, 유다는 예수의 체포와 재판을 가능하게 만든 음모에 가담한 의식적인 실행자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 버전에서 이 사도는 영향력 있는 서기관에게 접근해 그리스도가 안전하게 갈릴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모하던 헌신적인 종자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정작 주님에게 입맞춤하는 순간, 그는 동료들에게 속아 넘어갔음을 깨닫게 되고, 결국 메시아의 수난을 불러온 결과를 낳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다이몬(daimon)' 번역을 둘러싼 논쟁

유다의 무죄를 주장하는 이 서사와 대조적으로, 또 다른 역사가 그룹은 이 복음서 번역이 오류로 얼룩져 있다고 반박합니다. 구원론적 해석을 무효화하는 핵심적인 오해 중 하나는 바로 '다이몬(daimon)'이라는 단어의 번역입니다. 플라톤 문헌에 근거하면 이 용어는 '영혼(spirit)'을 의미하지만, 기독교 문헌에서 동일한 단어는 '악마(demon)'를 뜻합니다.

이러한 의미 구분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리옷 사람 유다를 질책하시던 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습니다. "너, 열세 번째 악마(혹은 영혼)여, 어찌하여 그토록 애를 쓰는가?" 단 하나의 단어 차이만으로도 이 사도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결국 최종 판단은 가능한 것일까?

일부 수정주의 역사가들에 따르면, 메시아의 일대기에서 유다가 맡았던 역할에 대해 확정적인 입장을 내놓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인간으로서 유다는 수많은 이들의 의심을 받던 지도자를 따르던 이들이 겪는 불확실성을 드러내는 여러 태도를 취했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러한 흔들리는 모습은 그리스도를 세 차례 부인했지만 동시에 기독교 신앙의 가장 위대한 전도자 중 한 명이 된 베드로에게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