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Cláudio Fernandes
중세의 아프리카는 이슬람 세력의 강력한 침투를 겪었으며, 이는 그곳에서 발전한 왕국들 간의 관계 상당 부분을 새롭게 정의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세사 연구의 세 가지 축과 아프리카
일반적으로 중세 시대에 대한 연구는 세 가지 주요 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첫째는 서유럽에서의 기독교 형성, 둘째는 동유럽에서 비잔틴 제국의 발전, 셋째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페르시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북아프리카와 남유럽을 아우르는 이슬람 문명의 탄생과 확장이다. 그런데 이슬람의 확장을 다룰 때, 같은 시기 아프리카 대륙에서 발전한 문명들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언급되곤 하지만, 대체로 지나치게 간략하게만 처리되는 것이 현실이다.
중세의 아프리카는 근대 세계의 형성 과정을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중요한 주제인 만큼,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고대부터 이어진 아프리카 문명의 명맥
사실 고대부터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여러 문명이 매우 두드러지게 성장해 왔다. 북서아프리카에 정착한 페니키아계 카르타고 문명, 나일 강 삼각주에서 꽃핀 이집트 문명, 이집트 남쪽에 자리한 누비아 문명, 그리고 오늘날 에티오피아 지역에서 발전한 악숨 왕국 등이 대표적이다.
이 문명들은 그 교류의 폭에 있어 차이는 있었지만, 로마를 비롯한 서유럽 문명은 물론 아라비아 반도, 이란 고원, 극동 지역에서 발전한 문명들과도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교역했다.
7세기, 이슬람 세력의 남하
중세에 접어들면서 북아프리카 전역은 이슬람화된 아랍 문명의 강렬한 침투를 겪기 시작했다. 7세기부터 이슬람은 아라비아 반도 전역을 넘어 북아프리카와 남유럽 방면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 현지 문화, 그리고 이미 기독교화된 대륙의 문명들과 충돌이 벌어지는 동시에, 문화적 교류와 융합이라는 부산물도 함께 나타났다.
마그레브의 이슬람화와 노예제의 강화
마그레브 지역에서는 말리 왕국과 같은 강대한 왕국부터 유목민들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이슬람 개종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슬람화와 함께, 고대부터 아프리카 대륙에서 이미 널리 행해지던 노예제는 오히려 더욱 강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중세 전문 역사가 리카르도 다 코스타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아프리카의 절반을 개종시키면서 이슬람은 노예제를 한층 더 부추기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슬람은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노예제를 실천해 왔기 때문이다. 무함마드가 등장하기 이전인 6세기에도 이미 아랍 상인들은 아프리카 동부 연안의 거의 모든 항구를 드나들며 반투 부족들과 곡물, 고기, 말린 생선을 노예와 거래했다. 비무슬림 흑인 사회 역시 노예제를 지극히 당연한 제도로 여겼다. 아프리카 왕들은 흔히 수백 명의 노예를 병사로, 심지어 개인 호위대로 거느리곤 했다." [1]
사하라 이남의 왕국들과 낙타 대상 무역
말리 왕국 외에도 이 시기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 발전한 가나, 카넴-보르누, 요루바, 베냉 등 여러 왕국이 두각을 나타냈다.
이들 왕국 간의 주요한 접촉과 교역의 수단은 바로 낙타 대상(隊商)이었다. 낙타 대상은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식량, 보석, 노예, 금속, 도자기, 융단 등 막대한 양의 물자를 실어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게 해 주며, 사하라를 넘나드는 거대한 상업 네트워크의 핵심 축이 되었다.
참고 자료
[1] COSTA, Ricardo da. 아프리카에서의 아랍 확장과 가나, 말리, 송가이의 흑인 제국들. In: NISHIKAWA, Taise Ferreira da Conceição. 중세사: 역사 II. 상파울루: Pearson Prentice Hall, 2009, 34-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