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파란 무엇인가?
참파(Champa)는 기원후 2세기부터 17세기까지 존재했던 고대 인도차이나 왕국으로, 중국 문헌에는 '린이(Lin-yi)'라 불렸다. 이 왕국은 오늘날 베트남의 중부와 남부 연안 지역, 즉 북위 18도선부터 남쪽으로 끄가 공(Point Ke Ga)에 이르는 지역을 아울렀다. 참파는 말레이폴리네시아계 민족인 참족(Cham)이 건국하여 인도화된 문화를 꽃피웠으며, 훗날 그 땅은 베트남인들에게 넘어갔다. 흥미롭게도 이 과정에서 베트남 문화 역시 참 문화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

건국과 초기 역사
참파는 한(漢) 왕조가 쇠퇴하던 192년, 현재의 후에(Hue) 일대를 담당하던 한나라 관리가 자신의 왕국을 세우면서 탄생했다. 처음에는 통킨(Tonkin)의 중국 식민지와 끊임없이 충돌하는 부족들이 거주하는 땅에 불과했지만, 점차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다. 그 결과 참파는 인도의 지명을 딴 네 개의 소국으로 구성된 분권적 국가로 변모했다.
- 아마라바티(Amaravati) — 꽝남(Quang Nam)
- 비자야(Vijaya) — 빈딘(Binh Dinh)
- 카우타라(Kauthara) — 나짱(Nha Trang)
- 판두랑가(Panduranga) — 판랑(Phan Rang)
인구는 주로 작은 해안 거점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참파는 무역과 해적 활동에 모두 동원될 수 있는 강력한 함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통일과 중국과의 관계
400년경, 바드라바르만(Bhadravarman) 왕의 통치 아래 참파는 통일을 이루었다. 그러나 참족이 중국 연안을 약탈하자, 중국은 446년 참파를 침공해 이 지역을 다시 종주권 아래 되돌려 놓았다. 이후 6세기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서 참파는 중국에 대한 충성 서약을 끝내고 독립적인 번영과 예술적 성취의 시대를 맞이했다.
중심지의 이동과 외세의 위협
이 시기 참파의 중심지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8세기 중반 무렵 중국 사료는 더 이상 '린이'를 언급하지 않고 왕국을 '환왕(Huan-wang)'이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는 가장 북쪽에 있던 주 판두랑가(판랑)의 이름을 중국식으로 음역한 것이다. 8세기 후반에는 자바(Java) 세력의 공격으로 참족이 큰 피해를 입었으나, 9세기에 들어 다시 북쪽의 중국 영토와 서쪽으로 성장하던 크메르(캄보디아) 제국에 대한 압박을 재개했다. 875년 인드라바르만 2세(Indravarman II)가 참파 역사상 여섯 번째 왕조인 인드라푸라(Indrapura) 왕조를 세우면서 수도는 현재의 후에 인근에 있는 아마라바티(꽝남)로 옮겨졌고, 이곳에는 화려한 궁전과 사원들이 세워졌다.
베트남·크메르·몽골과의 전쟁
10세기에는 베트남의 다이비엣(Dai Viet) 왕국이 참파를 강하게 압박하여, 참파는 1000년에 아마라바티를, 1069년에는 비자야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1074년 아홉 번째 참 왕조를 연 하리바르만 4세(Harivarman IV)는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추가 공격을 물리쳤지만, 1145년 수리아바르만 2세(Suryavarman II)의 공격적인 지휘 아래 크메르 제국이 참파를 정복했다. 그러나 2년 뒤 새로운 참의 왕 자야 하리바르만 1세(Jaya Harivarman I)가 일어나 크메르의 지배를 뒤엎었고, 그의 후계자는 1177년 캄보디아의 수도 앙코르(Angkor)를 약탈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1190년부터 1220년까지 참족은 다시 캄보디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13세기에는 1284년 베트남의 쩐(Tran) 왕조와 몽골의 공격까지 겹쳐 격렬한 시련을 겪었다.
참파의 멸망
15세기 말에 이르러 끊임없는 공격과 방어의 전쟁 속에서 참파 왕국은 사실상 소멸 직전에 몰렸다. 영토는 하나둘씩 주변 세력에게 병합되다가, 마침내 17세기에 참파는 완전히 흡수되고 말았다. 참파의 종언은 아시아 대륙에서 해양적 특색을 지닌 유일한 문화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참파의 예술과 건축
참 회화는 오늘날 사원에 남겨진 비문을 통해서만 그 실체를 짐작할 수 있다. 인도 굽타(Gupta) 미술의 영향을 받은 참 조각가들은 야성적인 에너지가 폭발하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형태를 특징으로 하는 매우 개성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한편 건축은 대체로 계단식 벽돌 탑 형태에 머물렀는데, 이는 오늘날 베트남 중부 해안 곳곳에 남은 참 탑(Cham Tower) 유적으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