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타이타닉호 침몰의 원인: 인적 오류와 불운, 그리고 숨겨진 비밀

타이타닉호 침몰의 원인: 인적 오류와 불운, 그리고 숨겨진 비밀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그린 윌리 슈퇴어(Willy Stöwer)의 작품 • WIKIMEDIA COMMONS

1912년 4월, '불침몰'이라 불리던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해 침몰하며 수많은 생명이 바다에 잠겼다. 그런데 한 세기가 지난 후에도 이 비극의 원인을 두고 새로운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공개되고 있다.

조타수의 치명적인 실수?

2012년, 타이타닉호에서 살아남은 선원 찰스 라이트롤러(Charles Lightoller)의 손녀가 할아버지가 평생 간직했던 비밀 정보를 세상에 공개했다. 그녀에 따르면 부선장 머독(Murdoch)이 회피 명령을 내렸을 때, 조타수 로버트 히친스(Robert Hichens)가 반대 방향으로 키를 돌렸다는 것이다. 만약 명령이 올바르게 수행되었더라면 타이타닉호는 침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녀는 주장했다.

언론의 희생양이 된 이즈메이

화이트 스타 라인(White Star Line)의 사장 J. 브루스 이즈메이(J. Bruce Ismay)는 당시 언론과 여론으로부터 이 비극의 책임자로 지목당했다. 그가 선장에게 엔진을 강제로 최고 속도로 밟게 해 속도 기록을 세우도록 했다거나, 호화여객선의 건조 자재비를 아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언론은 그를 브루트(Brute), 즉 "악당 이즈메이"라 불렀고, 배를 버리고 도망친 죄로 "타이타닉의 겁쟁이"라는 오명까지 얹었다. 공식 조사에서는 무혐의 판정을 받았지만, 그의 평판은 되돌릴 수 없이 추락했고 결국 1913년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석탄창고의 대형 화재 가설

또 다른 가설도 주목받고 있다. 다큐멘터리 타이타닉: 새로운 증거(Titanic: The New Evidence)는 출항 전에 배의 석탄 저장고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섭씨 1,000도에 달했을 수 있는 고온이 강철을 심각하게 손상시켜 선체 구조를 약화시켰고, 그로 인해 빙산 충돌 시 피해가 훨씬 커졌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파괴 공작설, 불량 리벳 합금설, 심지어 파라오의 저주설까지 온갖 황당무계한 가설들이 나돌았지만, 결국 범인은 단 하나였다. 바로 빙산 그 자체였다.

인적 오류와 불운의 연쇄

달빛 없는 고요한 밤

망보기 요원들은 쌍안경을 갖고 있지 않았다. 여기에 달이 뜨지 않은 어두운 밤, 잔잔하게 편안한 바다까지 겹치면서 빙산에 부딪히는 파도의 흔적조차 볼 수 없어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성급한 회피 기동

부선장은 정면 충돌을 피하기 위해 즉시 침로 변경을 명령했지만, 이것이 오히려 훨씬 더 나쁜 결과를 낳았다. 빙산이 수선 아래 선체를 긁으며 지나가면서 6개의 수밀 격벽이 잇달아 침수된 것이다.

혼란스러운 대피 작전

충돌의 심각성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자, 경악에 빠진 선장은 대피 명령을 내리기까지 30분을 허비했다. 이미 수량이 부족했던 구명보트는 승객들을 가득 채우지 못한 채, 절반도 채워지지 않은 상태로 내려갔고 이는 수많은 승객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엉킨 구조 신호

타이타닉호는 여러 차례 조난 신호를 발신했지만, 신호들은 잘못 전달되거나 무시되었다. 타이타닉호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캘리포니언호(Californian)는 벵골 광탄과 모스 부호 신호를 조난 신호로 해석하지 않았고, 이 화물선의 무전사는 장비를 끈 상태였기 때문에 구조 요청 전문을 받을 수조차 없었다.

세 번째 배의 존재?

한 가설은 캘리포니언호와 카르파티아호(Carpathia)보다 타이타닉호에 더 가까운 배가 있었지만 구조 신호를 외면했다고 주장한다. 그 배는 자신의 불법 행위가 발각될까 두려워 위치를 밝히지 않은 무허가 포경선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