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연극 엔터테인먼트 중심지인 브로드웨이의 첫 공연은 18세기와 19세기 사이에 시작되었습니다.

뉴욕에는 이 도시의 활기를 고동치는 넓은 대로들이 얽혀 있으며,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웅장한 대도시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러나 수많은 '브로드웨이(넓은 대로)'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날 세계적인 연극 엔터테인먼트의 성지로 자리잡은 맨해튼의 그 '브로드웨이'입니다.
브로드웨이란 무엇일까요?
타임스 스퀘어 한복판에 자리한 브로드웨이에는 42번가부터 53번가 사이, 맨해튼 거리를 따라 펼쳐진 지역에 총 39개의 대형 전문 극장이 모여 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 명소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관람되고 수익성 높은 연극 장르의 산실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습니다. 하지만 그 출발이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20세기 초반, 유성영화의 급속한 보급과 1929년 대공황으로 인해 브로드웨이 극장들은 흔들리는 데뷔를 겪어야 했습니다.
첫 공연과 '아메리칸 웨이 오브 라이프'
실제로 최초의 공연은 18세기와 19세기 사이에 이루어졌으며, 당시 무대는 버레스크 쇼, 오페라, 셰익스피어 드라마가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최초의 뮤지컬은 해외에서 들어왔습니다. 영국 예술가 그룹이 '더 엘브스(The Elves)'를 공연하면서 브로드웨이에 뮤지컬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이어 1866년에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금액인 2만 5천 달러의 화려한 제작비가 투입된 '더 블랙 크룩(The Black Crook)'이 선보여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20세기에 본격적으로 접어들면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아메리칸 웨이 오브 라이프'와 깊은 호흡을 함께하게 됩니다. 이 시기 뮤지컬은 대체로 가볍고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주제로 구성되었습니다.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무대에 등장한 것은 대공황 이후였습니다. 1935년, 오페라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가 미국 남부에서 살아가던 가난한 흑인들의 삶을 그려내며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194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 경제 위기의 극복은 브로드웨이 쇼에 대한 열정을 되살렸습니다. 1943년에는 카우보이와 젊은 농장 처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오클라호마!(Oklahoma!)'가 무려 2,000회 공연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1959년 작품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은 영화로 제작되어 전 세계 스크린을 사로잡았으며, 브라질에서는 '수녀 이야기(A Noviça Rebelde)'라는 제목으로 불후의 명작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도약하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브로드웨이는 전 세계 관객들이 찾는 진정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변모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T.S. 엘리엇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캐츠(Cats)'와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이 여러 박스오피스 기록을 경신하고 수상의 영광을 안았으며, 세계 여러 나라의 극단에 의해 재창조되었습니다. 이미 그 무렵 토니 어워드(Tony Awards)는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는 모든 작품들이 가장 탐내는 권위 있는 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현재 브로드웨이 극장들은 '브로드웨이 리그(The Broadway League)'라는 조직을 통해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극장 소유주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세계 각지에서 상연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습니다. 2009년에는 브라질 무대에서 '헤어스프레이(Hairspray)'의 상륙이 기대를 모았고, 미국에서는 1960년대의 논란과 함께 큰 성공을 거두었던 '헤어(Hair)'의 리바이벌 공연이 북미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