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은 1944년 하반기부터 이탈리아 전선에서 본격화되었으며, 몬테카스텔로(Monte Castello) 전투 등 주요 전역에 참여했습니다.

연합국 편에서의 참전
브라질은 미국, 영국, 소련, 그리고 프랑스 등 각국의 민간·군사 저항 세력과 함께 연합국 진영에 서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습니다. 적진은 물론 이른바 '로마-베를린-도쿄 추축국(Axis Powers)'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브라질은 왜 전쟁에 뛰어들었을까요? 그리고 그 활약은 어땠을까요?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배경: 바르가스 시대와 에스타도 노보
1937년부터 1945년까지 지속된 바르가스(Getúlio Vargas) 시대의 '에스타도 노보(Estado Novo, 신국가)' 체제는 명백한 독재 정권이었습니다. 바르가스는 이탈리아 파시즘과 나치 독일의 정치경찰 조직과 매우 흡사한 기구를 구축했으며, 1941년까지 이들 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1941년 일본 항공기의 진주만(Pearl Harbor) 해군 기지 공습으로 미국이 공식적으로 참전하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미국은 나치-파시스트 세력의 잠재적 침공을 차단하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 군사적 영향권을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브라질에는 방어상 절대 취약해서는 안 되는 전략적 요충지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곳이 리우그란지두노르치(Rio Grande do Norte)주 해안에 위치한 헤이스마고스 요새(Forte dos Reis Magos)였습니다. 미국은 바르가스를 동맹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판단했고, 이에 따른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학자 보리스 파우스토(Boris Fausto)는 저서 『브라질사(História do Brasil)』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도 루스벨트는 전쟁이 세계적 규모로 확대되어 미국도 개입하게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망은 미국 전략가들로 하여금 자국의 안보 범위를 남미, 특히 브라질 북동부의 ‘돌출부’까지 확장하도록 만들었다. 미국은 또한 정치·이념적 공세를 펼쳐 범미주 회의(Pan American Conferences)를 추진하는 등 하나의 공동 목표, 즉 각국의 정치 체제와 무관하게 미국의 지휘 아래 아메리카 대륙을 방어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1]
브라질 선박 피격과 선전포고
브라질이 미국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나치 독일은 보복에 나섰습니다. 처음에는 브라질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선박들을 공격했지만, 점차 북동부 연안 근해를 항해하던 상선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1942년 8월 5일부터 17일 사이 여섯 척의 브라질 선박이 독일 잠수함에 의해 침몰했고, 그 결과 6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참극은 브라질 전 국민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겼고, 여론은 바르가스 정부에 대독 선전포고를 촉구하는 압력으로 작용했습니다. 결국 같은 해 8월, 브라질은 추축국에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브라질 원정군(FEB)과 이탈리아 전선
유럽 전선에 파견된 브라질 군인 부대는 1943년 11월 13일 창설된 브라질 원정군(Brazilian Expeditionary Force, FEB) 소속이었습니다. FEB는 미국, 영국, 소련 등 연합군과 함께 유럽 전투에 투입될 것을 전제로 특별히 창설된 부대였습니다. 약 25,000명 규모의 FEB 병사들은 이탈리아 전선에서, 특히 몬테카스텔로 지역에서 싸웠습니다. 이곳은 이탈리아 해방을 위한 전투 중 가장 중요한 격전지로 꼽히는 곳입니다. 브라질 군인의 전사자는 총 443명에 달했습니다.
참고 문헌
[1] FAUSTO, Boris. História do Brasil. 상파울루: EDUSP, 2013, p. 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