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에서는 사략선(私掠船)의 활용이 특히 성행했습니다. 16세기와 17세기 유럽 열강에게는 식민지를 방어할 함대를 직접 운용하고 유지하는 비용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약탈 면허, 합법화된 해적 행위
그래서 각국 정부는 민간 선박에 '약탈 면허장(letter of marque)', 즉 전쟁 위임장을 발급해 적국 선박을 나포할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사략선은 나포한 전리품 대부분을 자신들이 가져갔고, 나머지 일부는 후원 국가에 납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들은 단독으로 혹은 함대를 편성해 활동했으며, 한 번 크게 성공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보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1573년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가 파나마 동해안의 항구 도시 놈브레디오스(Nombre de Dios)에서 스페인의 은괴 수송선단을 나포했을 때, 그의 선원들은 평생을 부유하게 살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부를 손에 넣었다고 전합니다.
이러한 막대한 수익의 가능성은 부유한 상인들과 귀족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들은 이윤 분배를 조건으로 이른바 '합법적인 해적 행위'에 자금을 댔고, 나포된 물품의 매각은 식민지 경제에도 상당한 활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해군 열세를 만회하는 전략
사략 행위는 종종 해군력에서 우위를 점한 적국을 상대로, 자신의 자원 부족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실제로 18세기 대부분의 기간과 프랑스 혁명 전쟁·나폴레옹 전쟁 시기 내내 프랑스는 영국을 상대로 이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해군은 호송 선단이 체계적으로 조직되지 않은 제2차 전역, 즉 인도양·태평양·남대서양에서 연합국 상선을 공격하기 위해 상선들을 무장 개조해 투입했습니다. 이들 무장 상선의 모험담은 대체로 흥미진진했지만, 두 전쟁의 전환이나 흐름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사략선의 특징
사략선원(corsair)은 흔히 해적과 혼동되지만, 엄연히 구분되는 존재로 어느 면에서는 '바다의 용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작고 빠르며 기동성이 뛰어난 은밀한 배를 사용해, 무력 충돌보다는 기습에 가까운 방식으로 해상 나포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행운'이 그들에게 미소질 때는 대형 선박마저 나포할 수 있었습니다. 1800년 로베르 쉬르쿠프(Robert Surcouf)가 지휘하는 플루트선 '라 콩피앙스(La Confiance)'호가 인도 회사선 '켄트(Kent)'호를 나포한 사례가 그 상징입니다. 다만 사략선이 주로 나포한 대상은 화물선 같은 상선이었고, 이런 배들은 사략 활동에 적합하지 않았기에 대개 되팔아 처분되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