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시아파와 수니파의 차이점: 예언자 계승 분쟁에서 비롯된 이슬람의 두 갈래

이슬람교의 시아파와 수니파의 차이는 주로 예언자 무함마드의 혈통 계승 방식과 정치·종교적 권위에 대한 해석에서 비롯됩니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차이점: 예언자 계승 분쟁에서 비롯된 이슬람의 두 갈래

글: 클라우디우 페르난데스(Me. Cláudio Fernandes)

예언자 무함마드의 죽음과 계승 분쟁

예언자 무함마드(모하메드)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이자 경전 꾸란을 전한 인물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뒤를 누가 계승할지를 두고 격렬한 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슬람은 단순히 정치 권력과 분리된 종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자체가 종교적 원리와 정치적 원리를 하나로 아우르는 문명 체계로 구조화되어 있었습니다.

예언자의 정당한 계승권을 둘러싼 분쟁 속에서 두 개의 주류 세력이 형성되었습니다. 바로 시아파와 수니파입니다. 이 분쟁의 기원은 서기 6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무함마드의 후계자인 칼리프이자 그의 장인이기도 했던 아부 바크르와 우마르가 정치 권력과 종교적 권위의 전수를 조직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 시도는 644년까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우마이야 가문 출신으로 무함마드의 사위였던 오스만이 칼리프로 즉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의 권위는 메디나 인근에 거주하던 이슬람으로 개종한 아랍인들에게 도전을 받았고, 결국 오스만은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오스만의 암살과 알리의 최후

오스만의 암살은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피살된 칼리프의 뒤를 이은 알리와 연관 지어졌습니다. 알리에게 반대하던 무슬림들은 칼리프와 그의 지지자들에게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당시 알리의 권위에 맞선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시리아를 통치하던 무아위야였습니다. 그는 오스만 암살 사건을 조사하고 알리의 연루 여부를 밝히겠다며 나섰고, 이러한 움직임은 또 다른 무슬림 집단이 알리를 제거하려는 음모로 이어져 알리 역시 암살당하는 비극을 낳았습니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차이점: 예언자 계승 분쟁에서 비롯된 이슬람의 두 갈래
경전 꾸란 외에도 수니파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행적을 기록한 '순나'를 따르며, 이것이 시아파와의 차이를 더욱 부각시킵니다.

시아파와 수니파, 어떻게 갈라졌나

무아위야는 강력한 칼리프로 군림하며 칼리프국의 수도를 메디나에서 오늘날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로 옮겼습니다. 그의 반대파 중 칼리프직이 세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세력, 즉 무함마드 가문의 후손에게 권위가 계승되어야 한다고 믿은 이들이 시아파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시아파는 오늘날까지 소수 집단으로 남아 있으며, 전통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꾸란과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대한 초기 해석을 고수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반면 다른 진영은 오늘날까지도 이슬람 인구의 약 90%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으로 많은 신도를 보유하고 있으며, 수니파로 명명되었습니다. 수니파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이유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시아파의 계승 개념과 갈라섰기 때문입니다. 둘째,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반영해 경전 꾸란과 이슬람 율법에 대한 해석을 끊임없이 갱신해 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수니파는 앞서 언급한 경전들 외에 순나(Sunna)라는 별도의 원전을 두었는데, 이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위대한 업적과 모범이 되는 사례들을 모아 편찬한 책입니다. '수니파'라는 명칭은 바로 여기서 유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