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브릴로 프린시프(Gavrilo Princip)는 1894년 6월과 7월 사이 보스니아 오블랴이(Obljaj)에서 태어났습니다. 우체부였던 아버지 슬하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여덟 명의 형제자매 중 여섯 명은 성인이 되기 전에 요절했습니다. 사라예보와 툴즐라에서 학업을 마친 뒤 1912년 베오그라드로 이주했는데, 그 이전부터 그는 이미 '검은 손(Black Hand)'이라 불리는 급진 민족주의 단체에 가담해 있었습니다.
비밀결사단 '검은 손'
'검은 손'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에 반발하는 이념에 영감을 받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세르비아의 영토 통합을 내세운 조직이었습니다. 지도자 중 한 명인 드라구틴 디미트리예비치(Dragutin Dimitrijević)는 세르비아 육군 정보국장으로서 혁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네델코 차브리노비치(Nedeljko Čabrinović), 트리프코 그라베츠(Trifko Grabež), 그리고 가브릴로 프린시프에게 오스트리아 대공 프란츠 페르디난트 암살이라는 위험한 임무를 맡겼습니다.
사전에 수립된 계획에 따르면, 대공 암살 후 세 명의 실행자는 자살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검은 손 소속 테러리스트들은 권총, 수류탄, 그리고 소량의 시안화물을 지급받았습니다. 세 사람 모두 회복 불가능한 결핵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공격의 배후 관계는 안전하게 비밀에 부쳐질 것으로 계산된 것이었습니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
흥미롭게도 세르비아 총리는 대공 암살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도 테러 계획에 대해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대표단은 세르비아계 장군 포티오렉(Potiorek)의 영접을 받았고, 이후 정·군 지도자들은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방문을 기념하는 공식 행사와 연설에 참석했습니다.
그 사이 검은 손 소속 일곱 명의 테러리스트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차량 행렬이 지나갈 경로를 따라 전략적으로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행렬이 진행되던 중 네델코 차브리노비치가 대공의 차량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지만, 운전기사가 재빨리 차를 피해 수류탄은 뒤따르던 다른 차량에 명중했습니다.
조직 지휘부의 지시에 따라 네델코는 시안화물 캡슐을 삼키고 밀랏카강(Miljacka)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캡슐에는 아마도 시안화물이 들어 있지 않았는지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그는 곧바로 당국에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한편 폭탄 투척 소식에 충격을 받은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사라예보 시장의 환영 연설 도중 이를 중단시키며 외쳤습니다. "당신들의 연설이 무슨 소용입니까? 나는 사라예보를 방문하러 왔는데 폭탄까지 던져집니다. 이것은 참을 수 없는 만행입니다!"
운명의 우연, 그리고 두 발의 총성
방문 일정을 변경한 대공은 폭탄 테러로 다친 수행원들을 병문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또다른 테러를 막기 위해 포티오렉 장군은 병원으로 가는 우회 경로를 마련했지만, 문제는 운전기사에게 이 변경 사항이 전달되지 않은 점이었습니다. 기사는 원래 계획된 경로를 그대로 따라갔고, 같은 차에 탑승한 포티오렉은 프란츠 요제프 거리에서 진로를 바꾸라고 재촉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근처 커피숍에 있던 가브릴로 프린시프는 계획을 실행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불과 2미터 남짓한 거리에서 그는 대공의 목과 부인의 배를 겨냥해 연속으로 총을 발사했습니다. 부부는 총독 저택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했습니다. 프린시프는 범행 직후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겨눠 자살을 시도했으나, 발사 직전 한 시민이 경찰과 함께 그를 제압하며 실패했습니다.
재판과 최후
이후 프린시프는 현지 경찰서로 압송되었고, 반역죄로 기소되어 동료 8명과 함께 공식적으로 고발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법률상 이러한 범죄에 대한 사형은 20세 이상에게만 적용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브릴로 프린시프의 정확한 나이에 대한 정보 부재로 인해 사형 선고는 무산되었고, 결국 그는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형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 프린시프는 1918년 4월 28일 결핵으로 옥중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쏜 두 발의 총성은 곧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되었고, 인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