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형제단은 알카에다를 비롯한 다양한 테러 조직에 이념적 토대를 제공해 온 급진 이슬람 조직입니다.

무슬림 형제단의 탄생
이슬람 근본주의, 즉 이슬람 급진주의의 뿌리는 소위 '무슬림 형제단'(Al Ikhwan Al Muslim)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조직은 1929년 이집트에서 하산 알반나(Hassan Al-Banna)가 창립했습니다. 최근에는 아랍의 봄, 시리아 내전 등의 사건을 계기로 무슬림 형제단이라는 이름이 여러 언론 매체에서 자주 거론되고 있습니다. 샤리아(이슬람 율법) 옹호와 지하드(이슬람을 위한 성전)의 극단적 해석은 무슬림 형제단의 근본적인 특징입니다.
오스만 제국의 몰락과 알반나의 등장
알반나의 조직은 1924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멸망한 뒤 등장했으며, 무슬림 아랍인들에게 결속력을 부여한 정치 조직이었습니다. 알반나는 20세기 초 이슬람 공동체가 처한 상황을 비판한 이집트의 교육자였습니다. 그의 눈에 오스만 제국의 멸망 이후 이슬람 공동체는 자신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는 코란을 재조명하고 그 원칙들을 급진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도덕적·영적 개혁을 일으키고자 했습니다.
급성장과 정치적 갈등
1940년대 무슬림 형제단은 50만 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할 만큼 크게 성장했습니다. 이 시기의 특징 중 하나는 이집트 내 유럽 열강의 영향력에 맞서 싸우면서, 아랍 국가들을 통일할 칼리프국(무함마드의 초기 후계자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이슬람 국가) 건설을 추진한 점입니다. 1948년 무슬림 형제단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이집트 왕정에 대한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정부군에 의해 좌절되었고, '무슬림 형제'들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누크라시 파샤 총리를 암살했습니다. 이후 이집트 정부는 무슬림 형제단 지도자들에 대한 탄압에 나섰고, 1949년 2월 12일 알반나마저 암살당했습니다.
사이이드 쿠티브와 더욱 급진화된 이념
창립자가 암살된 후 무슬림 형제단에는 알반나보다 더욱 급진적인 새 지도자 사이이드 쿠티브(Sayyid Qutb)가 등장했습니다. 쿠티브는 미국과 유럽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어 서구의 생활 방식에 익숙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서구 혐오는 미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원하면서 본격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무슬림 형제단에 합류했으며, 그의 사상은 주로 『표지들(Ma'alim fi al-Tariq)』과 『유대인과의 싸움』이라는 저서에서 체계화되었습니다.
쿠티브가 발전시킨 핵심 개념은 자힐리야(jahiliya)로, '무지' 또는 '반역'을 의미합니다. 쿠티브에 따르면 서구 민족들은 종교에서 비롯된 가치와 도덕을 타락시켰습니다. 이슬람 급진주의는 바로 쿠티브가 발전시킨 이러한 관점에서 탄생했습니다. 이 사상가에게 자유와 권리는 신(알라)에게서 비롯되며 코란에 담겨 있고, 여기서 샤리아가 해석됩니다. 샤리아는 본질적으로 반민주적인 법률 체계입니다. 무슬림 형제단의 또 다른 특징인 범이슬람주의는 이슬람 전통과 코란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행위에 대한 '성전', 즉 지하드를 전제합니다.
현재의 무슬림 형제단
현재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레바논, 파키스탄 등 여러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급진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 하마스, 9·11 테러의 배후인 알카에다, 그리고 이라크와 시리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국가(IS)는 모두 사이이드 쿠티브의 사상에서 이념적 기반을 두고 있으며, 무슬림 형제단 회원 다수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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