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제2차 세계대전기 유고슬라비아: 나치 침공과 내전의 격랑

제2차 세계대전기 유고슬라비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고슬라비아에서 벌어진 전쟁은 내전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으며, 내부 집단들이 서로 싸우는 동시에 침략한 나치 독일에 맞서는 복합적인 양상을 보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기 유고슬라비아: 나치 침공과 내전의 격랑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분쟁으로, 유럽 거의 전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유고슬라비아의 경우 전쟁은 1941년 나치 독일군이 국가를 침공하고 크로아티아인이 통제하는 괴뢰국가를 수립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내부 집단들은 지역 장악권을 두고 서로 다투면서 동시에 나치 점령에 저항했습니다.

나치 침공과 우스타샤의 크로아티아

유고슬라비아는 1929년부터 세르비아인이 주도하는 독재 군주국이었으며, 강력한 탄압을 통해 지역의 다른 민족 집단들을 통제해 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당시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파울 섭정의 통치 아래 있었고, 이 나라의 분쟁은 1941년 4월 나치의 침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나치는 1941년 3월 파울 섭정에게 추축국 가입을 강요했습니다. 유고슬라비아는 나치의 최후통첩을 거부할 수 없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추축국은 1940년 삼국 동맹 조약을 통해 결성된 동맹으로, 독일·이탈리아·일본으로 구성되었으며, 전쟁 과정에서 헝가리와 루마니아 등 다른 국가들도 합류했습니다.

유고슬라비아와의 동맹은 그리스 침공에서 고전하던 이탈리아를 지원하기 위해 자국 군대의 영토 통과를 보장하려는 독일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이 동맹은 독일에 전쟁 수행에 필요한 중요한 자원도 안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추축국과의 결합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파울 섭정을 축출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1941년 4월 6일 나치의 전면 침공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침공은 지역 권력 구조의 완전한 재편을 초래했습니다. 독일은 먼저 유고슬라비아 영토 일부를 분할해 이탈리아·불가리아·헝가리에 넘겼고, 일부는 직접 점령했으며, 상당 부분은 '크로아티아 독립국' 창설에 사용되었습니다.

나치가 세운 이 괴뢰국가에는 오늘날의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해당하는 영토가 극우 성향의 크로아티아 정당인 우스타샤(Ustaše)에 할양되었습니다. 크로아티아 국가가 괴뢰국가로 간주된 이유는, 표면상 독립을 유지했음에도 나치군의 주둔을 강요당했고 공무원 임명과 같은 내정 사안에서 독일의 간섭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크로아티아는 안테 파벨리치(Ante Pavelić)의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새로 수립된 국가에서 크로아티아 정권의 핵심 정책은 세르비아계 주민에 대한 인종 청소였습니다. 1941년 당시 크로아티아 국가 내에는 약 220만 명의 세르비아인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스타샤의 목표는 세르비아인 인구의 3분의 1을 살해하고, 3분의 1을 추방하며, 나머지를 가톨릭으로 강제 개종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세르비아인은 정교회 신자였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우스타샤는 야세노바츠 수용소를 설립했으며, 이곳에서 약 10만 명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항 운동과 내전

나치의 점령과 우스타샤가 가한 테러는 이에 맞서는 무장 저항 세력의 형성을 촉발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저항 진영에서 두드러진 세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 체트니크(Chetniks): 대세르비아 건국을 위해 싸운 세르비아 왕당파·민족주의자들로, 드라자 미하일로비치(Draža Mihailović)가 이끌었습니다.
  • 파르티잔(Partisans): 나치즘과 우스타샤 파시즘에 맞선 다양한 민족 출신의 공산주의 계열 유고슬라비아인들로,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가 이끌었습니다.

나치에 대한 저항 세력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유고슬라비아의 전쟁은 본질적으로 지역 장악권을 놓고 세 집단이 벌인 내부 분쟁이었습니다. 이는 어느 시점에 파르티잔과 체트니크가 내부 적대 세력과의 싸움에 집중하기 위해 나치와 휴전을 협상했을 때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이 전쟁의 특징이자 제2차 세계대전의 다른 여러 전선에서도 나타난 특징은 전투의 극심한 폭력성이었습니다. 교전 세력 모두가 자행한 민간인 학살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역사가 맥스 헤이스팅스(Max Hastings)는 이렇게 전합니다. "수티예스카 계곡[세르비아]의 모든 마을이 파괴되었다. 먼저 우스타샤가 정교회 마을들을 불태웠고, 그다음 체트니크가 무슬림 마을들을 불태웠다."

4년간의 분쟁 끝에 파르티잔이 최종 승리했으며, 이 과정에서 약 120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파르티잔은 영국과 소련의 지원에 힘입어 체트니크는 물론 크로아티아인과 나치까지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전후 유고슬라비아의 지도자 자리는 요시프 브로즈 티토에게 돌아갔습니다. 티토는 사회주의 체제를 확립하고 생애 내내 유고슬라비아를 독재적으로 통치했지만, 한편으로는 지역의 민족 갈등을 통제하는 데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참고문헌: HASTINGS, Max. 『The world at war 1939-1945』. Rio de Janeiro: Intrinsic, 2012, p. 4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