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퀘레미즘: 제툴리우 바르가스의 계속 집권을 요구한 브라질 대중 운동

퀘레미즘(Queremismo)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이후, 제툴리우 바르가스(Getúlio Vargas)의 계속 집권을 요구하며 거세어진 브라질의 대중적 여론 운동을 가리킨다.

퀘레미즘: 제툴리우 바르가스의 계속 집권을 요구한 브라질 대중 운동

글: Me. Cláudio Fernandes

1930년 혁명과 에스타두 노부 체제

제툴리우 바르가스는 1930년 이른바 '1930년 혁명'을 통해 브라질 공화국 대통령에 오랐으며, 자신을 권력에 앉혀 주었던 바로 그 군부 세력에 의해 축출되는 1945년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특히 1937년부터 1945년까지는 에스타두 노부(Estado Novo, 신국가) 체제가 운영되었는데, 이는 그가 이미 일원이었던 쿠데타(1930년 혁명) 안에서 또 다른 쿠데타를 일으킨 것에 해당한다.

긴 집권 기간 동안 추진된 다양한 경제·사회적 개혁과 강력한 정치 선전은 바르가스의 계속 집권을 바라는 대중적 목소리를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대중 운동은 '퀘레미즘'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모순과 균형의 정치, 바르가스 시대

바르가스 시대(Era Vargas)는 브라질 역사에서 가장 모순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중요한 시기 중 하나로 평가된다. 바르가스는 뛰어난 정치적 융통성과 연합 능력 덕분에 많은 학자들에게 마키아벨리적인 정치가로 여겨졌다. 실제로 그는 나치즘과 파시즘 진영과 긴밀한 정치적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동시에 미국과도 긴밀한 경제 관계를 구축했다. 노동 정책과 선전 메커니즘은 바로 이러한 양면적 외교의 대표적 사례다.

바르가스는 브라질의 기초 산업을 육성하는 한편, 노동자들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일련의 법률들을 제정했다. 여기에 더해 그는 유럽의 전체주의 체제에서 행해지던 방식처럼 자신의 이미지를 찬양하는 정교한 선전 기구를 만들었다. 이러한 선전은 대중이 바르가스를 우상이자 아버지 같은 온정적 지도자로 숭배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종전 이후의 민주화 압력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바르가스는 독재 체제를 개방하고 민주적 구조를 도입하라는 압력을 점차 받기 시작했다. 전쟁 중 나치 진영과의 관계를 끊고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과 함께 싸웠던 이상, 그가 더 이상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45년에는 새로운 정당 결성과 새로운 선거 경쟁을 향한 문이 열렸다.

이 과정에서 바르가스는 루이스 카를루스 프레스치(Luís Carlos Prestes)를 사면한 뒤 브라질 공산당(PCB)과 손잡고, 새로운 제헌 의회를 통해 권력을 연장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의 집권 기간이 이미 너무 길었기 때문에 바르가스가 직접 선거에 출마할 여지는 없었다. 그의 정치 기반에서 내세운 후보는 에스타두 노부 수립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에우리쿠 가스파르 두트라(Eurico Gaspar Dutra) 장군이었다.

퀘레미즘의 등장과 에스타두 노부의 종말

바로 이러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퀘레미즘'이 탄생했다. 바르가스가 추진한 노동 개혁의 혜택을 누렸고, 그를 둘러싼 강렬한 개인 숭배 선전에 익숙해진 대중들은 바르가스의 계속 집권을 열렬히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군부는 바르가스가 권력에 머무는 것에 따르는 위험을 감지하고, 1945년 10월 그를 사임으로 몰아붙였다. 이로써 에스타두 노부 체제는 막을 내렸다.

* 이미지 출처: CPDOC/FG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