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은 1990년대 아프가니스탄 파슈툰족 거주 지역에서 등장한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입니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내전 기간 동안 국가 장악을 목표로 활동하며 급진적인 샤리아(이슬람법) 해석을 강요했습니다. 탈레반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다가 미군의 군사 작전으로 축출되었고, 이후 2021년 미군 철수와 함께 다시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탈레반 핵심 요약
- 이슬람법에 대한 급진적 입장을 내세우는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입니다.
- 1994년 아프가니스탄 내전 시기에 파슈툰족 출신 학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습니다.
- 1996년 아프가니스탄 영토 대부분을 점령하고 반동적·권위주의 정부를 수립했습니다.
-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권력에서 축출되었습니다.
- 2021년 미군 철수 이후 다시 아프가니스탄의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탈레반의 기원
탈레반은 1994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등장한 수니파 근본주의 세력입니다. 이들은 당시 아프가니스탄 내전으로 인한 극심한 혼란 속에서, 아프가니스탄의 다수 민족인 파슈툰족 출신 인사들로 구성되었습니다. 특히 종교학교인 마드라사의 학생들이 대거 합류하면서 조직이 형성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들 마드라사의 상당수는 인접국 파키스탄에 위치해 있었는데, 파키스탄 역시 파슈툰족 인구가 많은 나라였습니다. 이러한 학생들의 역할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조직 이름도 파슈토어로 '학생'을 뜻하는 '탈레반(Taliban)'에서 유래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아프가니스탄에 평화와 안보를 회복시키겠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실질적인 목표는 급진적으로 해석된 이슬람법인 샤리아를 전국에 강제하는 것이었습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했나?
그렇습니다. 탈레반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했으며, 2021년 8월에는 다시 권력을 되찾았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탈레반은 1994년 무장 민병대로 등장했으며, 당시 여러 세력이 권력을 다투던 아프가니스탄 내전이라는 배경 속에서 근본주의적·보수적 이념을 전국에 확산시키려 했습니다.
짧은 기간에 걸쳐 빠르게 세력을 확장한 탈레반은 1996년 수도 카불을 함락시켰습니다. 이를 계기로 탈레반 정부인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이 수립되었고, 이후 북부 일부 지역을 제외한 국토의 약 90%를 장악하게 됩니다. 북부 지역은 탈레반에 맞선 저항 세력인 북부동맹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탈레반 정권은 극히 반동적이고 권위주의적이었습니다. 이 시기 이들의 대표적인 관행 중 하나는 공개 처형이었으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채찍질을 당하거나 사지가 절단되기도 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탈레반 정권을 승인한 나라는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단 세 곳에 불과했습니다.
탈레반은 국가 전반에 걸쳐 급격한 변화를 강요했습니다. 여성들은 부르카 착용이 의무화되었고, 친척의 동행 없이는 거리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또한 교육을 받는 것이 금지되었고, 환자 돌봄 목적의 의료 분야 외에는 일할 수 없었습니다. 남성들은 턱수염을 기르고 거리에서 터번을 쓰도록 강제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종교적·민족적 소수자에 대한 박해가 자행되었고, 음악, TV, 영화 등 서구 문화 요소들은 국내에서 금지되었습니다. 시아파 무슬림, 기독교인, 힌두교인, 타지크족 등이 주요 박해 대상이었습니다. 탈레반이 정한 규칙을 어긴 사람들은 앞서 언급된 처벌(채찍질, 절단, 처형)에 직면할 수 있었습니다.
탈레반은 언제 축출되었나?

2001년 탈레반의 몰락은 미국이 주도한 군사 작전의 결과였습니다. 이 군사 원정은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미국 테러, 즉 알카에다가 자행한 테러로 약 3천 명이 사망한 사건의 직접적인 결과였습니다.
알카에다는 탈레반과 마찬가지로 수니파 근본주의 성향의 조직으로,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끌고 있었습니다. 알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 영토 내에 잠입해 새로운 테러리스트를 훈련하는 기지로 활용했으며, 이는 탈레반 정부의 허가 하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탈레반에게 알카에다를 영토에서 추방하고 오사마 빈 라덴을 인도하여 재판받고 체포될 수 있도록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탈레반이 이 요구를 거부하자, 미국은 북부동맹과 동맹을 맺고 2001년 10월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나섰습니다.
두 달 만에 탈레반 정권은 붕괴했습니다. 이후 탈레반은 한동안 약화기를 겪었지만, 조직 자체는 끝내 소멸하지 않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일부 지역에 숨어 지내며 활동 반경을 파키스탄까지 넓혔고, 이후 주민 갈취, 후원금, 아편 생산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왔습니다.
탈레반의 재집권
20년간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권력에서 배제되었고, 이 기간 동안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와 유사한 성격의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이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미국의 지원을 받았으며, 미국은 국가 안보를 보장하고 국내 근본주의 세력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아프가니스탄군을 훈련시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의 재집권은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가 가져온 결과였습니다. 이 과정은 2020년 트럼프 행정부 시절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으며, 미국과 탈레반 간의 협상을 통해 철수 방안이 논의되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실질적인 철수가 진행되었습니다.
탈레반은 2014년부터 이미 세력을 강화하고 활동을 확장해 왔으며, 국내 일부 내륙 지방에서 그 영향력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2021년 초,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 철수가 9월까지 완료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8월에 철수가 가속화되면서, 이는 탈레반의 대대적인 군사 공세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불과 2주여 만에 탈레반은 판지시르 계곡 일부 지역을 제외한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재점령했습니다. 2021년 8월 15일, 카불이 탈레반에게 함락되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아슈라프 가니는 해외로 도피했고, 아프가니스탄에는 새로운 탈레반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탈레반이 어떤 방식으로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게 될지에 대한 우려가 국제사회를 중심으로 크게 확산되었습니다.
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많은 이들이 197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탈레반의 부상 사이에 역사적 연관성을 짓습니다. 이 전쟁은 1978년부터 아프가니스탄에 들어선 사회주의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소련이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소련군은 사회주의 정권 전복을 노리는 반군, 이른바 무자헤딘(mujahideen)과 싸웠습니다.
무자헤딘은 스스로를 무신론자인 사회주의자들과 싸우는 성전(聖戰)의 전사라고 여겼습니다. 이들 반군은 미국,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의 자금 지원을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여러 집단 내부에 반동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이념이 뿌리내렸습니다.
10년간의 전쟁 끝에 무자헤딘은 소련군을 몰아냈고, 1992년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사회주의 정부를 전복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수립되었지만, 무자헤딘 각 집단 간의 이해관계 차이로 인해 내전이 다시 발발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탈레반이 등장했습니다. 1994년 탈레반이 결성되자 무자헤딘의 일부와 아프가니스탄의 근본주의 세력들이 이에 합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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