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나폴레옹 근위대의 맘루크 기병대

나폴레옹 근위대의 맘루크 기병대

맘루크란 누구인가

'맘루크(Mamluk)'는 아랍어로 '백인 노예'를 뜻하는 용어다. 주로 튀르크계 출신이었던 이들은 1250년부터 1517년까지 무려 260여 년간 이집트를 통치했다.

오스만 술탄이 이집트에 파샤를 임명한 뒤에도 맘루크들은 '베이(Bey)'라는 칭호를 받으며 지방 행정관으로서 지위를 유지했다. 1770년 이후에는 24명의 베이가 사실상 모든 권력을 쥐었고, 파샤는 명목상의 권위만을 남겨졌다. 보나파르트가 이집트를 정복하기 위해 마주해야 했던 상대 역시 바로 이들의 군대였다.

프랑스군에 들어온 맘루크들

1798년 9월 7일, 승자가 된 보나파르트는 8세에서 16세 사이의 어린 맘루크들을 프랑스군에 입대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동서 병사의 혼합은 생각보다 순탄하지 않았고, 결국 동방식 군복과 무장을 갖춘 맘루크 기병 한 개 중대를 편성하는 선에서 만족해야 했다.

1799년에는 보나파르트가 루스탕(Roustam)과 라자(Raza)를 데리고 귀국했다. 또한 1801년에는 백여 명의 다른 맘루크들이 동방군(Armée d'Orient)과 함께 마르세유 항에 상륙했다. 이들은 라프(Rapp) 장군의 지휘 아래 하나의 기병대로 모였고, 1804년에는 제국근위대 엽기병 연대에 통합되었다.

전장에서의 명성과 몰락

맘루크들의 용맹함은 곧 전장에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살아남은 이는 단 18명에 불과했다. 한편 이집트의 맘루크들은 1811년 파샤 메헤메트 알리(Mehemet-Ali)가 그 지도자들을 학살하면서 권력을 영원히 잃고 말았다.

맘루크 중대의 편성과 변천

보나파르트가 이집트에 도착했을 때, 이 나라는 무인 과두정치가 전제적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프랑스로 돌아온 젊은 최고사령관은 이브라힘 베이와 무라드 베이 진영에서 탈영한 병사들을 중심으로 한 개 중대를 조직했고, 여기에 노예 신분에서 도망쳐 온 조지아인, 아르메니아인, 체르케스인 등을 더했다. 알록달록한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이 50명의 기병들은 미래의 정복자에게 훌륭한 호위대가 되어주었다.

1804년 7월 제국근위대가 재편성될 때, 나폴레옹은 맘루크 중대를 엽기병(chasseurs à cheval) 연대에 배속시키는 포고를 내렸다. 이 부대는 프랑스인 참모진을 두고 정원 124명을 유지했다.

이 숫자는 1806년부터 1810년까지 102명으로 줄었다가, 1813년 1월 중대가 기병대(squadron)로 승격되면서 다시 250명으로 늘어났다. 물론 이 시점의 맘루크들이 모두 순수한 동방의 아들이었던 것은 아니다. 1814년 해산 당시 진짜 맘루크는 단 18명뿐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가족이 있는 마르세유로 향하던 길에 폭도들에게 거의 대부분 학살당하고 말았다.

루스탕, 황제의 맘루크

나폴레옹의 유명한 맘루크였던 루스탕(Roustan)은 주인에게 각별한 총애를 받았지만, 끝내 그를 버리고 엘바섬행을 거부했다. 이후 그는 런던에서 자신을 전시하며 돈을 벌었고, 말년에는 두르단(Dourdan)에서 65세의 나이로 이름 없이 생을 마감했다. 흥미롭게도 주인만큼이나 유명했던 이 남자는 근위대 소속 맘루크였던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맘루크의 복장과 장비

맘루크들의 머리 장식은 '타르부슈(tarbouch)'라 불리는 일종의 납작한 체키아(chechia) 모자였으며, 1807년부터는 더 높은 '카후크(cahouk)'로 대체되었다. 두 모자 모두 '샬(shal)'이라 하는 터번으로 감싸 착용했다. 여러 색깔의 헐렁한 로브인 '베니셰(beniche)'를 조끼 격인 '얄렉(yalek)' 안에 입었고, 바지인 '샤루알(charroual)'은 대개 진홍색·자주색·선홍색 계열이었다. 부츠인 '쿠프(khouff)'는 빨강, 초록, 노랑 등 다양한 색을 띠었다.

그들이 탄 말은 아라비안 종마가 아니라 엽기병들이 사용하는 군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