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라파누이 – 이스터 섬의 거인, 모아이가 품은 수수께끼

1722년, 부활절 일요일의 우연한 발견

1722년 어느 부활절 일요일 저녁 6시. 네덜란드에서 출항한 탐험선의 갑판 위에서 선원들은 평소처럼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이콥 로흐번(Jacob Roggeveen) 함장의 지휘 아래 이들은 4개월 반 전 탐사와 무역을 위해 항해를 시작했고, 스페인 대형 갤리선과 한 차례 격돌했을 때도 속도의 우위로 위기를 벗어나는 등 그동안 순조로운 항해를 이어왔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감시병이 "육지가 보입니다!"라고 외칩니다. 지도에도 없던 미지의 섬. 흐릿한 황혼의 빛 속에서 해안을 바라보니, 긴 돌담 위에 거대한 거인들이 마치 상륙을 막으려 드는 것처럼 서 있었습니다. 로흐번은 해안에서 멀리 닻을 내리고 새벽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낙이 밝자 유럽인들은 두 번째 놀람을 경험합니다. 밤새 위협적으로 보였던 '거인들'은 제자리에 그대로였고,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니 그 사이를 평범한 체구의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을 겁먹게 한 것은 석상이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섬을 발견한 날짜를 기려 '이스터 섬'이라 이름 붙인 뒤 상륙을 결행했습니다.

과학을 당황시키는 거상, 모아이

평균 5m 안팎의 거대 석상들이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이 섬 곳곳을 군림하며 과학의 설명을 무디게 합니다. '모아이(Moai)'라 불리는 이 거상들을 어떻게 운반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아무도 확실하게 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석상들은 북쪽과 북동쪽, 남쪽, 남서쪽, 남동쪽 등 제각각의 방향을 향해 서 있습니다.

이스터 섬은 남미 대륙 서해안에서 약 3,500km 떨어진 화산섬으로, 해발 고도는 200~500m에 이릅니다. 행정적으로는 칠레 발파라이소 주에 속하며 '칠레령 오세아니아'를 구성합니다. 섬 곳곳에는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들이 해독된다면 당시 문화에 대한 많은 비밀이 밝혀질지도 모릅니다.

화산 기슭에는 완성되지 못한 채 방치된 200기가 넘는 모아이가 남아 있습니다. 조각도 마치지 못하고, 배치되지도 않은 채입니다. 원주민들은 이 섬을 '테 피토 오 테 후아(Te Pito o Te Henua)', 즉 '세계의 배꼽'이라 불렀습니다.

모아이의 세 가지 유형

첫 번째 유형: 해안가에 세워진 석상들로 약 200~260기에 달하며, 일부는 조각된 화산 라노 라라쿠(Rano Raraku)에서 20km 이상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아후(Ahu)'라 불리는 장례용 석대 위에 여러 기가 나란히 세워졌고, 머리에는 푸나 파오(Puna Pao) 화산의 적색 암석으로 깎은 통모양 관모 '푸카오(Pukao)'가 얹혀 있었습니다.

두 번째 유형: 라노 라라쿠 화산 기슭에 세워진 석상들입니다. 완성형이지만 다른 모아이와 달리 몸통에 다양한 상징문이 새겨져 있고 눈구멍은 파여 있지 않습니다. 이들은 앞선 석상들보다 더 깊은 수수께끼를 품고 있습니다.

세 번째 유형: 오랫동안 가장 널리 알려진 '투쿠투리(Tukuturi)'입니다. 다리가 있다는 독특한 특징을 지니며, 잉카 이전 예술의 석상들과 비교되면서 이 섬 주민들의 기원에 대한 통설에 의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섬은 어느 시점에 이유를 알 수 없이 버려집니다. 작업자들은 도구와 작업장을 그대로 두고 떠났습니다. 마치 해일 같은 자연재해, 외부의 침입 혹은 역병 등으로 작업이 강제로 중단된 것처럼 말입니다.

모아이는 피뢰침이었을까?

1989년, 일부 과학자들은 이 섬에 잦은 방전 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에 착안해 모아이를 '피뢰침'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시대에 피뢰침을 설계할 지능은 대체 누구에게 있었을까요? 석상 본체가 정교한 선과 디테일로 가득한 데 비해 관모는 장식 없이 지극히 단순한 형태라는 점에서, 어떤 이들은 번개의 충격으로부터 거상을 보호하기 위해 관모가 만들어졌다고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브라질 신문 오글로부(O Globo)의 세계·과학·생명면에 실린 리바마르 폰세카의 기사에 따르면, 이 이론은 마라냥 연방대학교 실험실에서 과학적으로 검증되었습니다. 6개월간 섬에 머물며 수수께끼의 모아이 기능을 연구한 전자공학자 프란시스코 소아레스(Francisco Soares)가 제기한 것입니다. 그는 이스터 섬의 고대 주민들이 이미 가우스 법칙을 실무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으며, 거대 석상을 통해 이를 경험적으로 적용해 방전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켰다고 밝혔습니다. 가우스 법칙은 유전체 표면 위의 공간 전하 분포 거동을 설명하는 법칙입니다. 석상 머리의 관모는 다공질 화산 재료로 만들어져 번개를 흡수해 석상이 파괴되는 것을 막았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모아이는 종교적·미적 기능만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1979년부터 주판과 같은 원시 계산 도구를 연구해온 소아레스는 실과 매듭으로 계산한 잉카의 키푸(quipu)를 추적하다가, 1722년 부활절 일요일 네덜란드인 로흐번에 의해 발견된 라파누이—이스터 섬의 원주민 명칭—에 도달했습니다. 그의 연구는 네 가지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모아이는 왜 세워졌는가, 왜 키가 크고 긴 형태인가, 관모는 왜 필요한가, 그리고 왜 해안 지역에만 세워졌는가.

그때까지 거대 석상은 인류학자와 민족학자들에 의해서만 연구됐고, 그들은 석상에 신비주의적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마법의 힘이 지닌다는 믿음(원주민들은 머리를 만지면 죽는다고 여겼습니다), 혹은 조상에 대한 헌사라는 해석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아레스는 해안에만 배열된 석상들이 방전을 끌어당기는 피뢰침 역할을 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칠레 해안에서 약 4,000km 떨어진 이 섬의 내륙 중심부는 그렇게 보호받았고, 그곳에는 주거지와 생계작물 재배지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실험실에서 재현된 방전 시뮬레이션

소아레스는 물리학·응집물질 석사인 안토니우 올리베이라 교수의 도움을 받아 마라냥 연방대학교 물리학과 실험실에서 방전 시뮬레이션에 필요한 조건을 재현했습니다. 고압 전원과 진공 장치, 그리고 모아이와 동일한 재료로 만든 축소 석상을 섬 모형 위에 배치한 것입니다. 그 결과 관모를 쓴 석상들이 모든 방전을 끌어당기고, 전하가 몸체를 따라 분산되어 손상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됐습니다. 더욱이 어둠 속에서 에너지를 머금은 관모가 빛을 발했는데, 그는 이것이 모아이에 부여된 '마력' 전설의 근거라고 설명합니다.

소아레스는 이를 통해 섬의 고대 주민들이 가우스 법칙의 실용적 지식을 이미 익히고 있었다고 결론 내립니다. 피뢰침 기능은 관모의 형태와, 몸체와 다른 다공질 화산 재료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고, 다른 재료가 사용됐다면 석상은 첫 번째 방전 때 파괴됐을 것입니다. '라파누이 모아이의 가우스 법칙의 경험적 적용과 전기 확산'이라는 제목의 연구를 남긴 이 젊은 과학자는 추가 연구를 위해 7월에 다시 섬을 찾을 예정이었습니다.

라파누이(Rapa Nui)

운반 방식도, 제작 도구도, 문명의 갑작스러운 소멸도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 라파누이의 수수께끼. 모아이는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거인들의 시선은 여전히 바다와 육지 너머를 응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