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갈등의 발생: 로마와 카르타고, 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투쟁

로마와 카르타고의 관계는 오랫동안 우호적으로 유지되었습니다. 실제로 그리스가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던 시기 내내 양 도시는 좋은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기원전 508년, 348년, 306년에는 통상 조약을 차례로 체결했으며, 기원전 279년에는 상호 방위 동맹까지 맺었습니다. 나아가 카르타고는 기원전 279년 에피루스의 피루스에 맞선 전쟁에서 로마를 지원하기 위해 함대를 오스티아 항구까지 파견하는 등 적극적인 협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공동의 적이 사라지다

그러나 기원전 3세기 중반, 국제 정세에 큰 변화가 찾아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기원전 323년 사망)의 후계자들이 세운 마케도니아 계열 왕국들의 지배 아래 들어가면서, 그리스 세력은 서지중해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양 도시를 묶어주던 공동의 이익, 즉 그리스 세력에 대한 견제라는 명분이 사라지자, 지중해의 두 강국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이 정면으로 마주 서게 됩니다.

카르타고의 압도적 우위

로마는 카르타고가 이미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음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연안에서 시작해 히스파니아(오늘날 스페인)의 상당 부분까지, 카르타고는 광대한 영토와 해상 네트워크를 보유한 해양 제국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문제는 섬들이었습니다. 티레니아해의 거의 모든 섬, 즉 코르시카, 사르데냐, 발레아레스 제도가 모두 카르타고의 지배 하에 있었던 것입니다.

시칠리아가 걸린 최후의 안보 딜레마

만약 카르타고가 시칠리아 정복을 완수한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남부 이탈리아 전역이 카르타고의 세력권에 편입되고, 카르타고 군대는 단 열흘이면 로마의 성문 앞에 도달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이탈리아 본토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외교적 타협의 여지는 좁았고, 결국 로마 앞에 남은 선택지는 전쟁뿐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로마와 카르타고의 운명을 건 대결, 이른바 포에니 전쟁의 막이 오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