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18~201년)에서 한니발이 이탈리아 침공을 감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결정적인 동반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알프스 너머 갈리아에 살던 켈트족, 즉 갈리아인들이었습니다. 로마의 팽창에 분노하던 그들은 카르타고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는 한니발의 원정에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켈트족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켈트족은 긴 검과 큰 방패, 목에 건 토르크(목걸이), 그리고 바지 차림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다소 거칠고 야생적인 인상을 풍기는 투구까지 더해지면, 전장에서 그들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사슬 갑옷(체인 메일)을 갖춘 병사는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리비우스가 전하는 갈리아 회의의 장면
리비우스 발췌
갈리아인들의 모습은 로마 사절단에게 놀라움과 경외감을 안겼습니다. 그 나라의 관습에 따라 그들은 무장을 한 채 회의장에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사절단은 연설에서 로마 민족의 영광과 용맹함, 제국의 위대함을 내세웠고, 한니발의 군대가 이탈리아로 향할 경우 갈리아의 영토와 도시를 통과시키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갈리아인들은 터무니없고 무례하다는 듯 폭소를 터뜨렸다고 전해집니다. 이 요청이 얼마나 황당하게 들렸는지, 관리들과 원로들이 흥분한 젊은이들을 진정시키는 데 한참 애를 썼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 전쟁을 피하겠다고, 정작 갈리아인들은 스스로 전쟁을 자기 땅으로 끌어들이고 남의 땅을 지키느라 자신의 영토가 유린당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니, 이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논리가 있을까요?

갈리아인들의 단호한 대답
회의장이 다시 평온을 되찾자, 사절단은 냉정한 답변을 들었습니다. 로마인들이 아무리 은혜를 베풀었더라도, 카르타고인들이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것만으로 갈리아인이 로마 편에 서서 카르타고와 싸울 명분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갈리아인들이 들은 이야기는 정반대였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자신들과 같은 혈통의 켈트인들이 조상의 땅에서 쫓겨나고, 공물을 징수당하며, 온갖 박해와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다른 갈리아 부족들의 회의에서도 대체로 비슷한 분위기가 이어졌고, 마르세유에 도착하기 전까지 로마와의 우호나 평화가 진지하게 논의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