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카토, 로마 검소 정신의 화신
대 카토(Cato Maior) 혹은 감찰관 카토(Cato Censor)로 불리는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Marcus Porcius Cato)는 기원전 234년 이탈리아 투스쿨룸(Tusculum)에서 태어나 기원전 149년 세상을 떠난 로마의 저명한 정치가이자 작가입니다.
병사에서 집정관까지: 눈부신 관료 인생
무명 가문 출신이었던 그는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파비우스 막시무스(Fabius Maximus) 휘하에서 복무하며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17세에 병사로 입대한 뒤, 기원전 204년에는 아프리카누스 스키피오(Scipio Africanus) 집정관 밑에서 재무관(quaestor)으로 활동했고, 기원전 199년에는 귀족 조영관(curule aedile)에 선출되었습니다. 이어 기원전 198년에는 사르디니아의 법무관(praetor)으로 부임해 그 섬의 완전 정복을 마무리했으며, 기원전 195년에는 집정관 자격으로 히스파니아(오늘날의 스페인)와 그리스에 파견되어 스페인 고지대 부족들을 정복하고 개선식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품행 교정자'로 불린 엄격한 감찰관
기원전 184년 감찰관(censor)에 취임한 그는 속담이 될 만큼 철저한 엄격함으로 직무를 수행했으며, "품행을 바로잡은 카토에게"라는 명문이 새겨진 동상이 세워질 만큼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정치 지배층의 헬레니즘화에 맞서 싸웠고,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성향의 스키피오 가문과 대립했습니다. 또한 여성의 사치를 규제하는 오피아법(Oppia law)의 폐지안에 반대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감찰관 재임 중에는 로마 포룸에 포르키아 회당(Basilica Porcia)을 건립하기도 했습니다.
"카르타고는 반드시 파괴되어야 한다"
말년인 기원전 153년, 그는 로마가 카르타고에 보낸 외교 사절단을 이끌었습니다. 카르타고의 놀라운 경제 회복에 깊은 위기감을 느낀 그는 이후 체계적인 반(反)카르타고 노선을 채택했고, 원로원에서 행하는 모든 연설을 "델렌다 카르타고 에스트(Delenda Carthago est, 우리는 카르타고를 파괴해야 한다)"라는 유명한 결어로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는 기원전 149년, 제3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하던 무렵 85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학문과 글쓰기에 대한 끝없는 열정
카토는 과학과 문학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법학과 농업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였으며, 말년까지 꾸준히 학문을 닦았다고 전해집니다. 실제로 80세에 그리스어를 배웠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다만 그는 그리스 예술 중 일부는 로마에 해롭다고 판단해 도입을 막으려 했습니다(참조: 카르네아데스). 한편 이 지혜로운 이교도 인물에게는 술에 대한 애호와 인색함이라는 비판적 평가도 함께 남아 있습니다.
카토가 남긴 저작들
카토는 사후 다수의 연설문과 『농업론(De agri cultura)』, 그리고 『로마 기원(Roman Origins)』이라 불리는 이탈리아 역사서 등 여러 저작을 남겼습니다.
- 『기원(Origins)』: 7권으로 구성된 역사서로, 로마 건국부터 루시타니아 정복자 갈바(Ser. Galba)의 법무관 시기까지를 다룹니다.
- 『농업론(De agri cultura, 또는 De re rustica)』: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유일한 저작입니다.
- 연설문: 약 150편을 저술했으며, 그중 약 80편의 단편이 현존합니다.
- 『군사론(De re militari)』
- 『법률과 제사·점술에 관하여(De lege ad pontifices auguresque spectanti)』
- 『아들에게 주는 교훈(Praecepta ad filium)』
- 『로마사(Historia Romana)』: 아들의 교육을 위해 집필한 대자(大字)판 역사서입니다.
- 『도덕가(Carmen de moribus)』
- 『경구집(Apophthegmata)』
참고로 『카토 경구집(Disticha Catonis)』과 『모노스티카 카토니스(Monosticha Catonis)』는 실제 카토가 쓴 저작이 아닙니다.
후대에 남겨진 기록들
코르넬리우스 네포스(Cornelius Nepos)는 대 카토에 대한 짧은 전기를 남겼으며, 플루타르코스 역시 그의 전기를 저술했습니다. 또한 리비우스(Livy)는 저서 39권 40장에서 카토의 인물상을 뛰어난 필치로 묘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