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초기, 프랑스군이 사용한 주요 병력 수송기와 연락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잉여 물자였습니다. 융커스 Ju 52와 피젤러 슈토르흐는 북베트남의 짙은 안개 속을 비행하거나 삼각주 지역의 다져진 진창 활주로에 착륙하며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후 이들 기체는 미국산 항공기로 교체되었는데, 1952년에는 더글러스 C-47 100대가, 1954년에는 페어차일드 C-119 25대가 도입되었습니다.
공수부대 조직의 재편
인도차이나 주둔 프랑스 공수부대는 처음에 제25공수사단으로 통합 편성되었지만, 상당수 공수 부대가 고립되거나 외딴 지역에서 따로 작전을 수행하면서 이 체계는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에 따른 재편 과정에서 공수병력 전담 군사사령부가 신설되었고, 여기에는 프랑스 본토 파견 부대, 외인부대 공수부대원, 그리고 사이공에서 훈련 중이던 베트남인 공수 식민지 대대가 모두 포함되었습니다.
지휘관의 교체
첫 번째 사령관은 샤베트(Chavette) 대령이었으며, 이후 드 볼라르디에르(de Bollardière) 대령, 그리고 질(Gilles) 장군으로 이어졌습니다. 질 장군은 1954년 인도차이나 전쟁이 종결될 때까지 지휘권을 유지했습니다.
부대 구성과 병력 규모
1947년부터 1953년 사이, 외인부대 소속 제1·제2공수대대, 식민지 공수 제1·2·3·5·6·8대대, 공수 기갑부대, 그리고 공군 제35공수지원단과 같은 지원 요소들이 프랑스 본토에서 파견되거나 극동 현지에서 창설·훈련되었습니다. 또한 랑글레(Langlais) 대령이 직접 창설하고 지휘한 SAS 형식의 특수작전 부대도 존재했습니다.
1953년 말 기준으로 프랑스는 16개 공수대대를 운용할 수 있었으며, 지원 부대까지 합치면 총 25,000명에 달하는 병력을 보유했습니다.
전쟁 기간 주요 공수 작전
전쟁 최초의 공수 작전은 1946년 9월, 당시 프랑스 식민제국의 일부였던 라오스의 루앙프라방 근교에서 실시된 강하였습니다. 이어 하이퐁 인근에서 베트민 부대를 공격하기 위한 공수 강하가 이루어졌습니다.
1947년에는 박깐(Bac Kan)과 까오방(Cao Bang) 사이에서 대규모 작전이 벌어졌고, 1948년에는 비엣찌(Viet Tri), 1950년에는 남딘(Nam Dinh) 일대에서 작전이 전개되었습니다. 이듬해인 1951년에는 응이아로(Nghia Lo)와 호아빈(Hoa Binh) 두 곳에서 대규모 강하가 단행되었으며, 1952년에는 동하이(Dong Hoi)와 홍강 유역의 푸도안(Phu Doan)에서 두 차례의 강하가 추가되었습니다.
공수 작전의 정점은 1953년에 도래했습니다. 랑선(Lang Son), 나산(Na San), 타인호아(Than Hoa), 그리고 디엔비엔푸(Dien Bien Phu)에서 공수 강하가 연달아 실시되었고, 1954년 3월부터 5월 사이에는 디엔비엔푸에서 두 차례의 추가 공수 투입이 이루어졌습니다. 디엔비엔푸는 이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운명을 결정짓는 결정적 전장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