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49년, 제3차 포에니 전쟁의 서막이 오르던 시절. 로마 집정관 센소리누스(Censorinus)가 카르타고 사절단 앞에 내린 명령은 짧았지만, 칼날처럼 냉혹하게 꽂혔다.
"바다에서 14km 떨어진 곳으로 떠나라"
센소리누스의 요구는 명확했다. 카르타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영토 안 어디든 좋으니, 바다에서 80스타디온(약 14km) 떨어진 내륙으로 거처를 옮겨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더욱 냉정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는 이 도시를 파괴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절규하는 카르타고
이 선언에 대한 카르타고인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단 한 번의 절규와 함께 군중은 방벽을 밀어제치고 연단 주변으로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은 제 옷을 찢으며 로마인들을 성토하고, 신음과 흐느낌 속에서 아내와 자식, 부모를 불러 이 처참한 광경을 함께 목격하게 했다. 입마다 되뇌는 것은 오직 하나, '카르타고'라는 이름이었다.
이 장면을 기록한 역사가 아피아노스(Appian)는 이 광경이 로마인들에게도 깊은 고통을 남겼으며, 심지어 집정관들조차 마음이 무거워졌다고 전한다.
설득은 실패하고, 운명은 정해지다
카르타고 측을 대표해 나선 한노(Hanno)는 로마인들이 이성을 되찾도록 설득하려 애썼지만, 모든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대신 센소리누스는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긴 담화를 통해 로마의 진짜 의도를 드러냈다.
"원로원의 명령을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다. 원로원이 명령했으니, 그것은 반드시 집행되어야 한다. 그 실행을 미루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바다를 바라볼 때마다 그것은 너희에게 과거의 지배와 옛 영광을 상기시키고, 반란의 충동을 일으켜 천 가지 재앙을 낳는다. 들판에서의 삶은 훨씬 안정적이며, 농경의 수확은 더 확실하다.
내 솔직한 생각을 말하자면, 해양 도시란 단단한 땅이라기보다 배에 가깝다. 갖가지 일로 끊임없이 출렁이고 무수한 격변에 시달리는 반면, 시골은 위험 없이 거둘 수 있는 열매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바다를 잃는다는 것, 곧 국가를 잃는다는 것
센소리누스의 논리는 냉철한 계산이었다. 해양 세력으로서의 카르타고의 근간, 즉 항해력과 무역, 그리고 바다와 연결된 기억과 야망을 통째로 잘라내겠다는 것이다. 로마는 도시의 벽을 허무는 것보다 먼저, 카르타고라는 문명의 '정체성' 자체를 지워버리려 했다.
그러나 카르타고인들은 이 최후통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도시를 버리는 대신 무기를 들었고, 3년에 걸친 포위전 끝에 기원전 146년, 카르타고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아피아노스가 남긴 이 기록은, 강대국의 논리가 어떻게 한 문명의 종말을 정당화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의 증언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