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구축함, 일본 전함, 잠수함, 그리고 감자 — USS 오배넌의 기적 같은 생존 신화

구축함, 일본 전함, 잠수함, 그리고 감자 — USS 오배넌의 기적 같은 생존 신화

미 해군의 행운아였던 구축함 USS 오배넌(USS O'Bannon, DD-450)은 제1차 바르바리 전쟁(1801~1805)에서 활약한 전설적인 해병대 장교 프레슬리 네빌 오배넌 소령의 이름을 딴 함선이다.

오배넌은 1942년 취역한 플레처(Fletcher)급 구축함으로, 최고 속도 35노트를 자랑했다. 주 무장은 포탑 5기에 장착된 127mm 함포 5문이었으며, 대공 화력 역시 인상적으로 강력했다. 40mm 대공포 10문과 20mm 기관포 7문을 보유했고, 어뢰 발사관 10개와 폭뢰까지 탑재한 만능형 구축함이었다.

이 배는 과달카날에서 첫 실전에 투입된 뒤 솔로몬 제도 해전으로 이어졌다. 당시 일본군은 룽가 포인트 기지와 비행장을 상실한 직후였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공세를 본격화하고 있었다.

전함과의 결투

1942년 11월 13일, 순양전함 히에이와 기리시마, 경순양함 1척, 구축함 14척으로 구성된 강력한 일본 함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히에이는 기리시마와 마찬가지로 공고(Kongo)급 고속전함으로, 356mm 주포 8문, 152mm 부포 16문, 127mm 함포 8문과 다수의 경대공포를 갖추고 있었다. 배수량은 약 37,000톤, 최고 속도는 30노트에 달했다.

이에 맞선 미군 전력은 중순양함 2척, 경순양함 3척, 구축함 8척뿐이었다. 그럼에도 미 함대는 용감하게 돌격했다. 오배넌은 거인 히에이에게 정면으로 달려들어 근접 돌입으로 적의 화력과 포문 수의 우위를 무력화시켰다. 심지어 일본 순양전함의 포탄들이 오배넌의 머리 위를 넘어갈 정도로 가까이 붙었다.

반면 초근접에서 쏟아진 오배넌의 포탄들은 일본 함선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동시에 다른 미군 함선들의 집중 포화까지 더해지면서 히에이는 단시간 내에 미군 항공기의 공격에 대응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결국 히에이는 B-17 중폭격기와 어벤저 어뢰폭격기의 공습 끝에 최후를 맞이했다.

감자 전투

행운의 오배넌은 또 한 번 명성을 증명할 기회를 맞았다. 이번 상대는 일본 해군의 로(Ro)-34 잠수함, 카이추(Kaichu) VI형이었다. 수중 배수량 1,219톤의 이 잠수함은 수상에서 최고 19노트, 수중에서 8.25노트의 속도를 냈으며, 항속거리는 15,000km에 달했다. 무장은 함수 어뢰발사관 4문, 76mm 함포 1문, 13.2mm 중기관총 1정이었다.

1943년 4월 5일 저녁, 로-34는 솔로몬 제도 러셀 제도 근해에서 수상 항해 중이었다. 같은 해역에는 미 구축함 오배넌과 스트롱(Strong)도 항해하고 있었다. 오배넌은 잠수함을 발견하는 즉시 공격에 나섰다.

구축함은 잠수함을 들이받기 위해 접근했다. 그러나 한 장교가 상대가 잠수함이 아니라 일본 기뢰부설함일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진로를 변경했다. 자신도 심각한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램(ram) 공격은 무산되었다.

그런데 급선회한 탓에 오배넌은 오히려 일본 잠수함 바로 옆에 붙어버리고 말았다. 낮게 깔린 잠수함을 향해 함포 포각을 충분히 내릴 수 없어 사격이 불가능한 반면, 일본 측은 얼마든지 조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더 이상 쓸 무기가 없자 오배넌의 선원들은 일본군을 향해 감자를 던지기 시작했다.

물론 감자가 사람을 죽이지는 못한다. 하지만 공포는 사람을 죽인다. 일본 승조원들은 수류탄 세례를 받고 있다고 착각하고 패닉에 빠졌고, 함포 재장전 대신 손에 든 감자를 바다에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짧은 시간이 골든타임이었다. 구축함은 잠수함에서 거리를 벌렸고, 이제야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결과는 예정된 듯했다. 일본 잠수함은 침몰했다. 오배넌은 같은 날 늦게 일본기 2대까지 격추했다. 이렇게 오배넌은 미 해군에서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구축함이 되었으며, 17개의 종군훈장과 대통령 표창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구축함, 일본 전함, 잠수함, 그리고 감자 — USS 오배넌의 기적 같은 생존 신화

고속전함(순양전함) 히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