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쿠데타: 브뤼메르 18일 정변과 제1제국의 탄생

배경: 공포정치에서 총재정부까지

프랑스 제1공화국은 점차 공포정치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산악파(몽타냐르)의 극단적인 폭력이 국가 전체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처형은 하나의 진정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독재의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다섯 명의 총재로 구성된 총재정부가 탄생했다. 억눌렸던 민중은 해방감을 느꼈고, 도덕 역시 크게 느슨해졌다. 테르미도르 반동의 주역들은 무위도식과 한낱 향락주의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최근에야 권력을 쥔 부유한 부르주아지와 달리, 민중은 굶주림에 시달렸고 빈곤은 날로 번져갔다.

총재정부는 끊임없이 좌우의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자코뱅파와 왕당파 사이에서, 또는 입법부를 구성하는 오백인회와 원로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균형을 잡아야 했다. 안정을 스스로 확보하지 못한 총재정부는 여러 차례 군대에 의존했고, 군대는 체제를 지키기 위해 왕당파를 상대로 쿠데타를 감행했다. 대표적인 예가 1795년 10월 5일(공화력 4년 벤데미에르 13일)과 1797년 9월 4일(공화력 5년 프뤽티도르 18일)의 두 차례 정변이었다.

브뤼메르 18일과 19일의 쿠데타 (1799년 11월 9일~10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쿠데타: 브뤼메르 18일 정변과 제1제국의 탄생

주요 인물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폴 바라스
  • 로제 뒤코
  • 장프랑수아 물랭
  • 루이 고예
  • 샤를 르클레르
  • 빅토르 모로
  • 조아킴 뮈라
  •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
  • 에마뉘엘조제프 시예스

쿠데타의 경과

행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공화력 3년 헌법을 개정하고자 했던 탈레랑과 시예스는 비밀리에 쿠데타를 치밀하게 준비했다. 보나파르트가 집행한 이 정변은 공화력 8년 브뤼메르 18일에 실행되었다.

두 음모자는 왕당파의 위협이 닥쳤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 결과 총재정부의 두 의회인 오백인회와 원로원은 파리에서 생클루로 회의 장소를 옮기게 되었고, 이는 군대와 보나파르트가 의회를 호위하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행정부를 이끌던 다섯 명의 총재 가운데 시예스와 뒤코는 사임했고, 탈레랑은 바라스에게도 사임을 권유했다. 마지막 두 명인 고예와 물랭은 직위 유지를 거부했지만 모로에 의해 구금되었다.

다음 날인 브뤼메르 19일, 보나파르트는 새 헌법 제정을 요구했다. 의원들의 야유에 부딪히자 동생 뤼시앙이 형을 지지하며 나섰고, 뮈라와 르클레르가 이끄는 척탄병들이 의사당에서 의원들을 축출했다. 총재정부의 권력이 공석으로 남자, 보나파르트는 현장에 남은 의원들에게 구체제의 종언을 의결케 하고 새 헌법을 제정할 집정정부의 출범을 승인받았다. 임시 집정관은 보나파르트, 시예스, 뒤코 세 사람이 맡았다.

시예스의 예상과 달리 군사 쿠데타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보나파르트는 곧바로 실권자로 부상했다. 1799년 12월 15일, 그는 제1집정관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공화력 8년 헌법을 선포했다. 그 자신이 제1집정관에 올랐으며, 1802년에는 종신집정관으로 임명되었다.

결과와 영향

  • 브뤼메르 18~19일의 쿠데타는 보나파르트의 권력 장악으로 이어졌고, 기존 권력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 총재정부는 집정정부로 대체되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제1제국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1804년 5월 18일 원로원 결의로 채택된 제1제국은 나폴레옹을 유일무이한 통치자인 '프랑스인의 황제'로 선포했다.
  • 그의 대관식은 1804년 12월 2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거행되었다. 교황 비오 7세가 참석한 가운데 나폴레옹은 스스로 황제의 관을 썼고, 황제 칭호를 가문의 세습 재산으로 만들었다. 이로써 새로운 왕조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