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를 정복하고 검을 던진 지도자
브레노스(Brennos)는 기원전 386년 로마 원정을 이끈 켈트족의 전설적인 지도자입니다. 역사가 리비우스(Livy) 등 여러 저자들이 전한 유명한 일화에 따르면, 갈리아 군대의 철수 조건으로 받기로 한 천 파운드의 금을 무게 달 때 로마인들이 저울 눈금을 조작하고 있다고 확신한 브레노스는 자신의 무거운 검을 저울 위에 올려놓으며 "바에 빅티스(Vae victis, 패배자에게 재앙이 있으라)"라고 선언했다고 전해집니다.
마케도니아·그리스 원정과 델포이의 좌절
기원전 280년에는 아키코리오스(Akichorios)와 함께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향한 켈트군 중앙 부대의 총사령관을 맡았습니다. 그는 다르다니아와 페오니아를 거쳐 기원전 279년 그리스로 진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내분이 발생하여 레오노리오스(Leonnorios)와 루타리오스(Lutarios) 휘하의 2만 명이 별도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막대한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여겨지던 아폴론 신전의 성소 델포이를 목표로 삼은 브레노스가 지휘하는 켈트군(트로구스 폼페이우스에 따르면 6만 5천 명)은 아테네인과 포키스인의 완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테르모필레와 오에타 협곡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신전 앞에서 좌절하고 말았는데, 실패의 실제 원인은 아마도 혹독한 겨울과 만연한 질병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후와 정체성 논란
스스로도 부상을 입은 브레노스는 잔여 병력을 수습하며 후퇴하여 마케도니아 남부 어딘가에서 아키코리오스의 부대와 합류했습니다. 켈트군이 트라키아 방면으로 계속 철수하는 동안, 그는 기원전 278년 초경 오르벨로스 산 남쪽의 헤라클레아에서 자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그는 이 원정 이후 소아시아에 정착한 갈라티아계 민족 중 하나인 톨리스토보기이족(Tolistobogii)의 지도자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트라본(Strabo)은 보다 오래된 저자들의 견해를 인용하여, 브레노스가 프라우시안(Prausian) 출신이라고 전합니다. 두 인물이 동일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고대 기록조차 의견이 분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