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아르토리우스 카스투스는 누구인가
루키우스 아르토리우스 카스투스(Lucius Artorius Castus)는 로마 기사 계급 출신의 군인으로, 브리튼 섬의 군단병들을 이끌고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원정에 나선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랫동안 이 사건은 서기 184년경 일어난 것으로 여겨졌으며, 그의 군사 경력 역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콤모두스 황제 통치기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그의 경력이 3세기에 위치해야 하며, 그가 이끈 군사 원정의 목적지도 사실 아르메니아(Armenia)였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았습니다.
인상적인 군사 경력
카스투스의 군인 생활은 동방에서 백인대장(센투리오)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시리아 주둔 제3 갈리카 군단과 시리아 팔레스티나의 제6 페라타 군단에서 복무한 뒤, 다뉴브 강 유역으로 자리를 옮겨 파노니아의 제2 아디우트릭스 군단과 다키아의 제5 마케도니카 군단에서 근무했습니다.
이후 제5 마케도니카 군단의 수석 백인대장(프리미필루스)으로 승진했고, 곧이어 브리탄니아 주둔 제6 빅트릭스 군단의 장교(프라이펙투스)로 임명되었습니다. 또한 미세눔 함대의 지휘관직도 맡았는데, 이는 미세눔에서 파견된 분견대를 이끌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ARM(...)' 비문 논쟁: 아르모리카에서 아르메니아로
브리튼에서 '두스(Dux)'라는 칭호를 받은 카스투스는 반란 진압 또는 전쟁 수행을 위해 군단병들을 이끌었는데, 그 목적지의 지명이 'ARM(...)'으로 시작한다는 점이 오랫동안 논쟁거리였습니다. 돌비문에서 지워진 나머지 글자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아르모리카(Armorica)'로 해독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X. 로리오(X. Loriot)가 비문의 초기 판독본을 재검토한 결과, 'M'이 실제로는 'E'와 결합된 글자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즉 지명은 'ARME(...)'이며, 카스투스의 원정은 파르티아 혹은 페르시아와의 분쟁 중 아르메니아에서 벌어진 것이 됩니다. 이후 그는 달마티아 근처 리부르니아 속주의 프로쿠라토르(재정·행정 감독관)로 임명되었습니다.
아서 왕 전설과의 연결 가능성
일부 학자들은 이 역사적 인물을 아서왕 전설의 토대 중 하나로 보아 왔습니다. 이러한 추측은 첫째, Artorius와 Arthur라는 이름의 음성학적 유사성에서, 둘째, 로마령 브리튼 및 아르모리카와 관련된 그의 활동에서 비롯됩니다. 그의 행적을 콤모두스 치세로 잘못 비정했던 오류 역시 이 가설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아서왕 전설과 사르마티아 신화 사이에는 중요한 유사점들이 발견되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콤모두스 치세에 사르마티아 기병대 일부가 브리튼 속주에 주둔했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카스투스 경력의 새로운 편년은 이 인물과 당시 사르마티아인들을 직접 연결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그의 원정지가 아르메니아로 확정되면서 2~3세기 아르모리카 반란 언급 역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크로아티아에서 발견된 비문이 말해주는 삶
카스투스는 기원후 2세기 후반에 활동한 로마 장교로, 중세의 전설적 영웅 아서의 모티브가 된 인물로 추정됩니다. 그의 출신은 캄파니아 혹은 달마티아로 여겨지며,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인근에서 발견된 두 개의 비문이 그의 화려한 군사 경력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리아에서 백인대장으로 시작한 그는 유대아, 파노니아, 다키아에서도 같은 계급을 유지한 뒤, 로마 기사 계급의 전형적인 관료 등용 과정(쿠르수스 호노룸)을 밟았습니다. 미세눔 함대의 프라에포시투스로 임명되어 나폴리 인근 미세눔에 기항한 로마 함대의 공동 지휘를 맡았고, 이후 다시 제국 반대편인 브리타니아(그레이트브리튼)의 장교로 부임했습니다. 제6 빅트릭스 군단을 지휘하던 그는 183년부터 185년까지 하드리아누스 방벽 너머에 살던 픽트족과 칼레도니아 부족들과 싸웠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85년 혹은 186년에는 황제의 명을 받아 '두스'의 칭호와 함께 반란 진압을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몇 년 뒤 리부르니아의 프로쿠라토르 센테나리우스로 달마티아에 주둔하던 그는, 196~197년 황위 찬탈자 클로디우스 알비누스와 싸우기 위해 갈리아로 원정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를 따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크로아티아의 비문에는 이 갈리아 원정에 대한 기록이 없지만, 그가 197년 리옹(루그두눔) 전투에서 전사하거나 치명상을 입었고, 시신이 리부르니아로 옮겨져 매장되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학자들의 가설: 켐프 멀론과 린다 앤 말코어
켐프 멀론(Kemp Malone)은 이미 1925년에 전설상의 아서왕을 루키우스 아르토리우스 카스투스와 동일시하는 가설을 제안했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사료들, 즉 몽머스의 제프리가 1136년경 완성한 브리튼 왕열전(Historia Regum Britanniae), 800년경 넨니우스가 저술한 브리튼인의 역사(Historia Brittonum), 그리고 웨일스 연대기(Annales Cambriae) 등에서 말하는 '색슨족에게 12번의 전투에서 승리한 브리튼 왕 아서'라는 통념을 뒤흔드는 대담한 주장이었습니다. 물론 카스투스는 색슨족과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들 사료들은 대부분 사건 발생보다 훨씬 뒤에 작성되었다는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로마 장교 '아르토리우스'라는 이름과 '아서'라는 이름 사이의 놀라운 유사성은 누구에게나 흥미로운 점으로 다가옵니다.
최근에는 린다 앤 말코어(Linda A. Malcor)가 멀론의 가설을 지지하며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녀에 따르면 아서왕 전설의 뿌리는 유라시아 국경 지대에서 시작되어 사르마티아인들에 의해 부분적으로 잉글랜드에 전해졌습니다. 실제로 이 '야만인'들 상당수가 로마군에 입대하여 북잉글랜드에 정착했는데, 바로 카스투스가 그 지역을 지휘하던 시기였습니다. 카스투스는 사르마티아 기병들의 도움을 받아 184년경 그레이트브리튼을 침공한 칼레도니아인과 픽트족에 대해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고(몽머스의 제프리 역시 아서가 색슨족뿐 아니라 픽트족과 스코트족까지 격파했다고 기술합니다), 이 때문에 사르마티아인들 사이에서 일종의 영웅으로 추앙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론: 전설의 한 조각
아르토리우스의 군사 원정이 전설적 아서의 모험담에 영감을 주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이 로마 장교가 중세 영웅의 유일한 원형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삶은 역사와 전설이 교차하는 매력적인 사례로 남아 있으며, 2004년 개봉한 영화 킹 아서(King Arthur)는 바로 이 가설을 기반으로 시나리오를 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