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툴족(Gétules)은 고대부터 로마의 아프리카 점령기에 이르기까지 누미디아와 마우레타니아 남쪽의 광대한 북서아프리카 지역에 걸쳐 거주하던 유목 목축 민족입니다.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본(Strabo)은 이들을 가라만테스(Garamantes)족의 남쪽 이웃으로 기록했습니다.
로마 문헌에 나타난 게툴족
기원후 6년, 게툴족은 누미디아의 왕 유바 2세(Juba II)에게 반기를 들었으며, 그 이전에는 유투르타(Jugurtha)와 로마 간의 전쟁에서 로마 편을 지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인 베르길리우스(Virgil)는 게툴족의 왕(전설적 인물일 수 있음) 이아르바스(Iarbas)와 그의 백성들을 무시무시한 전사들로 상징되는 민족으로 묘사했으며, 스트라본은 그들을 "리비아 여러 민족 중 가장 강력한 민족"이라 평가했습니다.
작가 아풀레이우스(Apuleius)에 따르면, 마다우로(Madaure) 식민지는 바로 이들 집단을 감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두 개의 강력한 부족
로마의 백과사전 작가 대(大)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는 게툴족 중 특히 강력한 두 부족을 언급했습니다. 하나는 바니우라이(Baniurae), 다른 하나는 아우토톨레스(Autotoles, 때때로 아우톨롤레스 또는 갈라울레스라고도 불림)입니다.
- 바니우라이족: 세부(Sebou) 강 계곡을 점거하고, 오늘날 모로코 시디 카셈(Sidi Kassem) 근처에 위치한 로마 식민지 바나사(Banasa)를 위협했습니다.
- 아우톨롤레스족: 현재의 부 레그레그(Bou Regreg) 강 계곡 출신으로, 대플리니우스는 이들을 "항상 약탈할 준비가 되어 있는 특히 위험한 야만인"으로 묘사했습니다.
역사가 살루스티우스(Sallust)는 저서 『유투르타 전쟁』에서 고대 리비아인들과 함께 이들을 "거칠고 난폭하며, 야생 동물의 고기를 먹고 짐승처럼 풀을 뜯으며 사는 자들"로 표현했습니다. 한편 게툴리아(La Gétulie) 지역은 라틴어 문헌에서 보라색과 황갈색 산물로 유명했습니다.
국가 없는 민족, 그러나 결코 약하지 않은 존재감
흥미롭게도 게툴 부족들은 실질적인 통일 국가를 건설한 적이 없습니다. 유바 2세가 스스로 "누미디아인과 게툴인의 왕"을 자칭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모리타니아 왕국과 누미디아 왕국의 형성에 크게 기여했으며, 한니ibal(Hannibal)과 유바 2세의 군대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목축민이자 유목민이었던 그들은 자신들의 영향권에 정착한 농경민들을 상대로 습격을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게툴족'이라는 이름의 의미
역사가 장 데장주(Jehan Desanges)에 따르면, "게툴족"이라는 용어는 특정하고 동질적인 단일 민족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생활 방식을 지칭하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이는 연구자 이브 몽데랑(Yves Mondéran)이 지적한 로마 문헌 속 베르베르 민족의 "광범위한 명명 유연성"을 보여주는 추가 증거이며, 이 용어의 실체가 민족적·정치적 범주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고대 말기의 변화
고대 말기에 게툴족은 제네트(Zénètes)족과 접촉하게 되었으며, 이 새로운 세력이 5세기경 게툴족의 이동을 더욱 가속화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