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300년 전 처형된 마지막 마녀들을 기리며, 스위스의 각 주(칸톤)들은 하나둘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왔습니다. 스위스에서 벌어진 마녀사냥은 유럽 종교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으로, 오늘날까지도 그 흔적과 교훈이 남아 있습니다.
재앙의 원흉을 찾아 나선 근세 사회
근세 유럽 사회는 흑사병과 같은 대규모 재난이 닥칠 때마다 그 책임자를 찾아 나섰습니다.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한 두려움은 곧 박해로 이어졌습니다. 마녀사냥에 대한 본격적인 탄압은 1420년대 프랑스어권 스위스, 특히 발레(Valais) 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발레 주는 이미 종교재판소가 이단자들을 단죄해 온 지역이었으며, 유럽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체계적인 마녀 재판이 열린 곳 중 하나로 꼽힙니다.
알프스에 퍼진 '사바트' 소문
'사바트(Sabbath)'라고 불린 악마 숭배 의식에 대한 소문은 15세기 초 알프스 지방에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기독교 사회에 위협이 될 만한 모든 것이 사냥감이 되었습니다. 악마와 결탁한 비밀 결사는 물론, 마술사나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녔다고 의심받는 개인들까지 감시와 고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본성의 행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도덕과 불결함, 악행, 우상 숭배와 마법 속에서 말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미워하고 다투며 질투하고, 분노와 경쟁심에 지배당합니다. 그들은 서로 대립하는 당파와 집단으로 갈라집니다. 이것이야말로 기독교 사회가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이후에도 끝나지 않은 박해
종교개혁으로 프로테스탄트가 등장했지만, 사회의 긴장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상의 악마 세력과의 싸움은 한층 거세졌습니다. 이단 혐의를 받은 스페인 출신 신학자이자 의사인 미셸 세르베(Michel Servetus)는 1553년 제네바에서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이후 칼뱅(Jean Calvin)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제네바에는 공포의 분위기가 지배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제네바는 종교재판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도시였지만, 동시에 그 박해를 가장 빨리 종식시킨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제네바에서 마녀 혐의로 처형된 마지막 인물은 미셰 쇼드롱(Michée Chauderon)으로, 그녀는 1652년 처형되며 스위스 마녀사냥의 어두운 장막을 닫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