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치 전투(1526년): 오스만 제국의 승리와 헝가리 왕국의 몰락
1526년 8월 29일, 모하치 평원에서 술레이만 대제가 이끄는 오스만 제국군과 러요시 2세(Louis II) 국왕이 지휘하는 헝가리 왕국군이 격돌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이 거둔 승리는 중세 헝가리 왕국의 종언을 고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헝가리 영토가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 트란실바니아 공국 사이에서 분할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전투 경과
오스만 술탄 술레이만 대제는 1526년 4월 약 8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콘스탄티노플을 출발해 북상했으며, 7월에는 다뉴브 강변의 요충지인 페트로바라딘(Petrovaradin) 요새를 점령했습니다.
이에 맞선 헝가리의 러요시 2세는 귀족들과 각 주의 병력을 총동원해야 했지만, 겨우 2만 6천 명을 소집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 혼성 부대는 칼로차 대주교이자 유능한 군사 지휘관인 팔 토모리(Pál Tomori)의 지휘 아래 배치되었습니다(8월).
두 군대는 8월 29일 모하치 인근에서 조우했습니다. 헝가리군의 용맹한 공격은 오스만군의 강력한 포격 앞에 좌절되었고, 정예 예니체리 군단의 반격에 밀린 헝가리군은 늪지대로 패주했습니다. 불과 스무 살의 어린 나이였던 러요시 2세는 도주 중 말과 함께 늪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이 전투에서 헝가리군의 지휘관 대부분과 병력의 절반가량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승을 거둔 오스만군은 9월 10일 수도 부다를 점령했고, 오스만 제국의 국경선은 사실상 빈 성문 앞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술레이만은 15일 뒤 부다를 떠나 콘스탄티노플로 회군했습니다.
전투의 결과
러요시 2세가 후계자 없이 전사하면서 헝가리 왕위 계승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술레이만 대제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페르디난트(Ferdinand I)에 맞서 트란실바니아 총독(보이보드) 얀 자포여이(János Zápolya)를 지지했습니다.
자포여이는 1526년 11월 10일 세케슈페헤르바르(Székesfehérvár)에서 열린 의회에서 큰 저항 없이 헝가리 왕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러나 러요시 2세의 미망인이자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인 마리아는 오빠 페르디난트의 손을 들어주어 프레스부르크(현 브라티슬라바)에서 왕비 측 궁정백이 주재하는 별도의 의회를 소집했고, 이 의회는 12월 17일 페르디난트를 헝가리 왕으로 선포했습니다.
그 결과 보름스 조약에 따라 야기에워워(Jagiellon) 왕조는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왕관을 합스부르크 가문에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헝가리는 둘로 나뉘어 서부는 합스부르크의 페르디난트가, 동부의 트란실바니아는 자포여이가 통치했으며, 두 왕은 오랫동안 서로 충돌을 반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