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를 로마의 '황제'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는 한 번도 황제였던 적이 없습니다. 카이사르는 뛰어난 로마의 군사 지휘관이자 정치가였으며, 집정관과 독재관 등의 직위를 역임했지만 '황제'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사용한 적은 없습니다.
카이사르가 실제로 지녔던 직위
율리우스 카이사르(기원전 100년~기원전 44년)는 생전에 다음과 같은 주요 직위를 거쳤습니다.
- 집정관(Consul): 기원전 59년에 선출되어 로마 공화정의 최고 정무관으로 활동했습니다.
- 독재관(Dictator): 국가적 위기 상황에 임명되는 비상 직위로, 처음에는 임시·단기 임기로 임명되다가 마침내 종신독재관(Dictator Perpetuo)으로 지정되었습니다.
-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 로마 국교의 최고 신직자 자리도 겸하며 종교적 권위까지 쥐었습니다.
'카이사르'라는 이름이 남긴 흥미로운 유산
흥미롭게도 '카이사르(Caesar)'라는 이름 자체가 훗날 황제를 뜻하는 호칭으로 이어졌습니다. 독일어의 '카이저(Kaiser)', 러시아어의 '차르(Tsar)'가 모두 여기서 파생된 것입니다. 하지만 본인인 카이사르는 생전에 황제 칭호를 쓴 적이 없습니다. 로마 제정은 그가 암살당한 뒤 양자인 옥타비아누스, 즉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기원전 27년에 권력을 장악하면서 비로소 시작되었고, 그래서 일반적으로 로마 최초의 황제는 아우구스투스로 간주됩니다.
결론: 답은 '0년'
따라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얼마나 오랫동안 황제였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0년"입니다. 그는 황제가 아니었으며, 종신독재관의 신분으로 로마를 사실상 통치하던 중이던 기원전 44년 3월 15일, 원로원 의원들의 암모살, 이른바 '이데스 오브 마치(3월 15일의 참변)'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로마는 내전을 거쳐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