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2년 잉글랜드 브룩스비에서 태어나 1628년 포츠머스에서 생을 마감한 조지 빌리어스(George Villiers)는 영국을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궁정의 실권자였습니다. 프랑스 작가 필리프 에를랑제는 그에 대해 "그의 미모는 과연 범인(凡人)의 수준을 넘어섰다"라고 기록했습니다.
두 왕의 총애를 독차지하다
'스티니(Steenie)'라는 애칭으로 불린 그는 뛰어난 외모에 더해 상당한 정치적 수완까지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덕분에 제임스 1세의 깊은 신임을 얻었고, 왕위를 계승한 찰스 1세에게도 형제처럼 가까운 총신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한 왕에게는 아버지 같은 정으로, 다른 왕에게는 형제 같은 정으로 절대적 신뢰를 얻은 그는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국정 전반을 사실상 주도하는 위치에 올랐습니다.
왕권 강화와 의회와의 갈등
버킹엄 공작은 청교도들과는 맞서 싸우는 한편 가톨릭에는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는 왕실의 특권을 강화하고 의회의 권한을 축소하는 데 주력했으며, 그가 국정을 주도하는 동안 찰스 1세는 의회를 두 차례나 해산시켰습니다.
프랑스와의 동맹과 왕비의 혼사
공작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지 빌리어스는 프랑스와의 동맹을 추진했습니다. 이 정책의 일환으로 그는 난항 끝에 새로 즉위한 잉글랜드 국왕 찰스 1세와 프랑스 국왕 루이 13세의 누이동생 앙리에트 마리아 공주의 혼사를 성사시켰습니다. 1625년 5월 11일 대리 결혼식이 거행된 뒤, 프랑스 백성들이 '부캉캉(Bouquinquant)'이라 불렀던 잘생긴 잉글랜드 귀족은 5월 24일 파리로 건너가 어린 신부를 맞이했습니다.
앙 도트리슈 왕비와의 스캔들
공작의 잘생긴 용모, 단정하고 세련된 이목구비, 그리고 그를 따라온 하인들이 운반한 무려 스물일곱 벌의 옷차림은 프랑스의 모든 귀부인들을 매료시켰습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의 최고 귀부인인 앙 도트리슈(Anne d'Autriche) 왕비조차 찰스 1세의 총신이 지닌 강렬한 매력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다소 지나칠 만큼 뜨거운 관심을 보였고, 공작 역시 이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그녀의 측근이자 강력한 인물인 슈브뢰즈 공작부인의 주선으로 두 사람은 여러 차례 몰래 만남을 가졌습니다. 바로 이 설정이 알렉상드 뒤마가 걸작 『삼총사』를 탄생시키는 영감이 되었습니다.
결렬과 비극적 최후
그러나 공작의 추태 없는 간달함은 심각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조지 빌리어스의 태도에 분노한 루이 13세는 그가 다시는 자신의 영토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금지했습니다. 격분한 버킹엄 공작은 프랑스와의 협약을 파기했고, 이는 곧 그의 불굴의 적인 청교도들을 만족시키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는 라 로셸에 원군을 보내기로 결심했으며, 루이 13세의 적대감에 대한 복수심에서 앙리에트 왕비를 박해하던 자국민들의 행위에 가담하는 저열한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대륙으로 출항하기 전날, 버킹엄 공작 조지 빌리어스는 광신적인 청교도 장교 존 펠톤(John Felton)이 가슴에 찌른 칼에 맞아 요절했습니다. 그의 시신에서는 앙 도트리슈 왕비의 초상을 담은 미니어처가 발견되었다고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