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하루 앞두고, 독일 스파이 파울 필트무츠(Paul Fitrmutz), 코드명 '오스트로(Ostro)'는 곧 벌어질 일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상륙작전 며칠 전 리스본에 머물던 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암호명인 '오버로드 작전(Operation Overlord)'의 세부 계획까지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정확한 장소와 규모를 담은 긴급 보고
독일군 지휘부와 히틀러가 예상했던 칼레가 아니라, 연합군은 실제로 노르망디 해안에 20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두 단계로 나뉜 공세를 펼칠 예정이었습니다. 오스트로는 이 사실을 베를린의 상급자들에게 즉시 알려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계획은 셰르부르 동쪽 카랑탄(Carentan) 지역에서 공중과 해상으로부터의 공격을 상정하고 있습니다"라며 그는 보고문에 상륙 지점을 구체적으로 적어 보냈습니다.
이중 첩보원의 파란만장한 인생
오스트로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어린 나이부터 첩보의 어두운 세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여섯 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정도로 총명했으며, 특히 높은 지능지수(IQ)를 자랑했습니다. 한때는 영국 비밀정보기관과도 협력한 바 있는데, 이 때문에 1935년 게슈타포에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영국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히틀러의 오스트리아·체코슬로바키아 병합 계획을 영국 측에 알려주는 등 중요한 정보를 흘려보냈습니다.
1939년에는 나치당에 입당했고, 이듬해인 1940년에는 리스본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독일을 위한 첩보망을 구축하는 한편, 영국이 의도적으로 흘려준 기만 정보도 함께 전달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보낸 정보 중 일부가 사실과 다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독일 측은 그가 정보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진실을 말했지만 외면당한 보고
당시 연합군은 '포티튜드 작전'이라 불리는 대규모 기만 작전을 통해 독일이 진짜 상륙 지점을 칼레로 오인하도록 유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오스트로의 보고는 오히려 독일 수뇌부의 의심을 더욱 부추겼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관한 그의 보고서도 결국 같은 운명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히틀러는 보고의 진위성을 인정하기를 거부했고, 그 결과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스트로가 상륙의 정확한 장소, 시간, 날짜까지 말해준다는 사실은 그 정보가 거짓이라는 결론에 나를 이끈다"라고 히틀러는 당시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너무 완벽한 정보는 오히려 함정으로 의심되었던 것입니다.
전쟁 후의 행보와 남겨진 가설
필트무츠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목숨을 건져냈습니다. 이후 그는 스페인으로 건너가 독일 주간지 <데어 슈피겔(Der Spiegel)>의 통신원으로 일하다가 195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약 그의 상륙작전 보고가 받아들여졌더라면, 노르망디의 역사,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의 흐름마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진실을 전했지만 끝내 믿음을 얻지 못한 한 스파이의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