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카리브해의 해적 '부카니어': 기원부터 몰락까지

부카니어란 누구인가?

부카니어(Buccaneer)라는 명칭은 오로지 카리브해에서만 사용된 특수한 호칭이었다. 이들은 1630년경 처음 모습을 드러냈으며, 약 1730년경 해적 시대가 저물 때까지 한 세기 가까이 활동했다. 흥미롭게도 최초의 부카니어 대부분은 유럽 식민지에서 도망쳐 나온 탈주민들이었다.

이름의 유래, '부캉'에서 시작되다

그들의 뿌리는 히스파니올라 섬(오늘날 도미니카 공화국과 아이티)에서 사냥하며 살던 '쿠르되르 부아(coureurs de bois, 숲을 누비는 자)'였다. 이들은 야생 소를 사냥했는데, 고기를 원주민 방식으로 손질했다. 즉 나무로 만든 일종의 그릴 위에서 고기를 건조하고 훈제한 것이다. 이 조리대를 '부캉(boucan)'이라 불렀으며, 스페인어로는 '바르바코아(barbacoa)',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라와크 인디언 언어의 '바르비코아(barbicoa)'에서 유래했다. 오늘날 '바비큐(barbecue)'라는 단어 역시 바로 여기서 탄생했다.
바로 이 '부캉'에서 프랑스어 '부카니에(boucanier)'와 영어 '버커니어(buccaneer)'라는 이름이 나왔다. 훈제·건조 처리한 고기는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선박이나 고립된 식민지와 교역하기 좋은 귀중한 상품이 되었다.

토르투가섬으로의 이주

스페인인들에게 히스파니올라 섬에서 쫓겨난 부카니어들은 1663년부터 히스파니올라 북서쪽에 위치한 토르투가(Tortuga, 거북이 섬)로 피신했다. 당시 이 섬은 프랑스령이었다. 이들은 스페인이 아닌 다른 열강의 식민지들로부터 어느 정도 지원을 받으며 활동했고, 그들의 행위는 1700년대까지 합법 또는 준합법적인 지위를 유지했다.

혹독한 환경이 만든 전사들

극히 적은 자원으로 생존해야 했던 탓에 부카니어들은 조선, 항해, 사냥에 모두 능숙한 다재다능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은 맹렬한 전사로 평가받았으며, 플린트록 소총(1615년 발명) 사용의 달인으로도 유명했다. 다만 이 무기의 작동 신뢰성이 워낙 낮았던 탓에 실전에서 널리 쓰이기까지는 1670년까지 시간이 더 필요했다. 부카니어들은 헨리 모건(Henry Morgan) 같은 해적이 조직하는 해안 원정 작전에도 고용되어 참여했다.

연대의식과 해적선의 민주주의

부카니어들 사이에는 강한 연대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고,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중요한 결정을 함께 내렸다. 이러한 전통은 훗날 해적선 안에서 운영된 민주적 규칙의 기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해안의 형제단

부카니어처럼 온두라스에 정착한 벌목업자들의 공동체도 있었다. 이들은 스페인의 코앞에서 귀중한 목재를 벌목해 팔아넘겼다. 부카니어들과 함께 이들은 '해안의 형제단(Brethren of the Coast)'이라 불리는 공동체를 이루었다. 직업 간의 전환이 매우 자유로웠기 때문에, '부카니어'라는 단어가 오늘날 흔히 '해적'과 동의어로 잘못 알려지게 된 배경이 되었다.

용어 혼동에 대한 보충 설명

이러한 혼동은 영어권의 용어 사용에서도 비롯된다. 영어에서 카리브해 해적들을 가리킬 때는 'buccaneer' 혹은 'freebooter'를 쓰는 반면, 'filibuster(필리버스터)'는 19세기 앵글로아메리카 출신의 용병 모험가들을 지칭하는 별개의 말이다. 이들은 현존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목적으로 무자비한 식민지화 행위에 가담했는데, 텍사스 식민지화가 대표적인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