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섬(스페인어: 토르투가, Tortuga)은 대서양에 떠 있는 섬으로, 길이 약 37km, 폭 약 7km에 달하며 현재 아이티 공화국의 북서쪽 앞바다에 자리하고 있다. 면적은 190km², 해안선은 총 80km에 이르며, 최고 지점은 해발 459m이다. 2004년 기준 인구는 약 3만 명으로, 인구 밀도는 km²당 160명 수준이다.
17세기 카리브해를 누비던 해적들의 강력한 거점이었던 이곳은 오늘날까지도 '해적의 섬'이라는 로맨틱한 이미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리와 자연 환경
섬 이름은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엎드려 쉬고 있는 거북이처럼 보이는 산에서 유래했다. 지질학적으로 거북섬은 히스파니올라 섬의 나머지 지역과는 별도의 지각 블록에 속한다. 섬 전체가 매우 험준한 편이며, 중앙에는 능선이 솟아 있고 북쪽으로는 테라스 지형이 발달해 있다. 연안은 사양토와 양토로 이루어져 있고, 해발 450m에 이르는 고지대에는 점토질의 산성 토양이 분포한다.
특히 남쪽 해안은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름다운 해변과 산호초를 자랑한다. 그중 '라 포앵트 우에스트(La Pointe-Ouest)' 해변은 여행 전문지 콩데 나스트(Condé Nast)가 선정한 '카리브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10곳'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무궁무진한 관광 잠재력
독특한 지질과 경치 좋은 자연 명소, 세계적인 해변과 산호초, 웅장한 산악 지형, 역사와 문화의 흔적, 그리고 버커니어와 필리버스터(사략선원)의 진짜 역사까지 갖춘 거북섬은 남다른 관광 잠재력을 지닌 곳이다. 또한 점토질 토양이 풍부해 도자기와 벽돌 생산에도 적합하며, 이는 주택 건설과 예술 작품 제작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역사: 해적의 전설과 부커니어의 실체
갈레온선에서 약탈한 보물에 얽힌 전설만큼 많은 곳은 이 섬을 제외하고는 없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거북섬은 흔히 알려진 '해적의 섬'이라기보다는 '버커니어(buccaneer)'들의 요새였다. 전설이 역사를 가려버린 셈인데, 정작 실제 역사는 전설보다 더욱 흥미진진하다.
거북섬의 북쪽 해안은 파도에 끊임없이 두들겨 맞는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접근이 거의 불가능했고, 사람들은 이곳을 '철의 해안(iron coast)'이라 불렀다. 반면 바람을 등진 남쪽 해안은 배들이 잘 숨을 수 있는 훌륭한 피난처를 제공했다. 17세기 바스트테르(Basse-Terre)는 섬에서 재배된 담배, 히스파니올라 섬의 버커니어들이 가공한 가죽, 그리고 스페인인들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이 오가는 교역의 중심지였다. 덕분에 거북섬은 '카리브해 최고의 버커니어 소굴'이라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
바로 이 섬에서 스페인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해안의 형제단(Brothers of the Coast)'이라는 결사단이 탄생했다. 이 조직은 버커니어, 필리버스터, 그리고 정착민(농장주)들로 구성되었다.
프랑스 식민지화의 시작: 르 바쇠르 총독
1640년, 프랑수아 르 바쇠르(François Le Vasseur)는 프랑스 국왕 루이 13세를 위해 총독 칭호와 함께 이 섬을 장악했다. 그는 수많은 버커니어들과 함께 영국인들을 몰아내고 스페인인들의 공격을 계속해서 막아냈으며, 이를 통해 프랑스 버커니어 세력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모험가들이 전리품을 이곳에 맡겨두면 프랑스와 특히 네덜란드 선박들이 찾아와 식량과 탄약을 공급하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이렇게 거북섬을 거점으로 삼은 프랑스 세력은 점차 히스파니올라 섬 서부 해안, 즉 스페인령 산토도밍고로 불리던 지역을 잠식해 나갔다.
베르트랑 도제롱과 식민지 질서의 확립
1665년, 루이 14세는 베르트랑 도제롱(Bertrand d'Ogeron)을 새 총독으로 임명하며 '거북섬 및 상도멍 연안(Isle de la Tortue et Coste Saint-Domingue)'을 맡겼다. 도제롱은 프티고아브(Petit-Goâve) 해안에서 버커니어로 살았고, 레오간(Léogane)과 포마르고(Port Margot)에서 농장주로도 활동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라로셸(La Rochelle)에서 수백 명의 신규 이주민(계약 기간이 36개월이라 하여 '36개월자'라고 불림)을 데려와 먼저 레오간에, 이후에는 거북섬에 정착시키며 상도멍 개척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식민지 체계를 정비하는 데 주력했으며, 1670년 무렵에야 비로소 질서가 확립되었다. 이후에도 소요 사태는 종종 일어났지만, 본격적인 반란은 더 이상 없었다. 버커니어들은 약탈 원정을 나설 때 총독으로부터 사략 면허를 받았고, 원칙적으로 전리품의 10%를 총독에게 납부했다.
일화: 2004년 '섬이 사라졌다'는 소동
2004년 9월, 허리케인 진느(Jeanne)가 통과한 직후 국제 언론(프랑스 언론 포함)은 며칠 동안 "거북섬이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섬이 일시적으로 침수된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섬은 허리케인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