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종이 위의 훌륭한 계획, 현실은 참담했다 — 튀니지 전선의 기록

종이 위의 훌륭한 계획, 현실은 참담했다 — 튀니지 전선의 기록

작전은 11월 29일 개시될 예정이었다. 지도 위에는 무척 매력적으로 보이는 계획이 그려져 있었지만, 실상은 한심할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드제이다(Djedeida)는 노샘프턴 연 대대의 목표였으며, 이 대대는 25파운더 포 1개 포대와 미군 기갑부대 B전투단 소속 그랜트 중형전차로 증강되어 있었다.

추축군 배후로 강하하는 낙하산 부대

존 D. 프로스트(John D. Frost) 중령이 지휘하는 제2낙하산대대는 44대의 다코타 수송기에 실려 추축군 방어선 깊숙한 후방인 드피엔(Depienne) 비행장에 강하하기로 되어 있었다. 사실 이곳은 점령조차 되어 있지 않은 단순한 비상활주로에 불과했다.

작전의 목적은 영국군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던 독일 공군(Luftwaffe)의 급강하 폭격 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드제이다 기지를 확보한 뒤에는 영·미 기갑부대가 튀니스(Tunis)까지 진격하여 승리를 완성한다는 구상이었다.

두 차례의 실패한 공격

그러나 드제이다에 대한 공격은 두 차례 시도되었음에도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노샘프턴 대대는 치명적인 스팬다우 기관총 사격에 휩쓸렸고, 평탄하고 개방된 지형으로 진출한 B전투단의 그랜트 전차들은 잔존한 독일 대전차포의 집중 포화 속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슈위기(Chouigui) 방면 전투 단계에서 독일군은 테부르바(Tebourba) 틈새를 통해 제11여단의 진지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럼에도 피셔(Fischer)가 제11여단을 괴멸시키지 못한 것은 의지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영·미군의 완강한 저항, 특히 햄프셔(Hampshire) 연대와 이스트 서레이(East Surrey) 연대 생존 병력들, 그리고 왕립포병대(Royal Artillery)의 25파운더 포대들이 보여준 필사적인 방어 때문이었다.

12월 1일, 정면과 후방에서 몰아친 공격

12월 1일, 제11여단은 정면과 중앙, 그리고 후방에서 동시에 공격받았다. 북쪽에서 출격한 루더(Luder) 소령의 전투단은 여단 사령부를 위협했다. 다행히 사령부는 제321야전포대의 25파운더 포와 제457경포대의 3.7인치(95mm) 산악 곡사포 바로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쏟아진 포탄의 화망은 독일 전차 6대를 격파했고, 루더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12월 2일, 전선 곳곳에서 벌어진 전투

다음 날인 12월 2일, 메드제즈엘바브(Medjez-el-Bab)에서 소환된 제13연대 기갑부대가 루더를 역공하여 저지했지만, 이 과정에서 전차 다수를 잃는 큰 손해를 입었다. 북쪽에서 공세를 이어간 후델(Hudel)은 노샘프턴 대대를 진지에서 몰아냈다. 반면 이스트 서레이 대대는 엘바탄(El-Bathan)에서 코흐(Koch)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격퇴했다. 가장 치열한 전투는 테부르바 앞에서 벌어졌는데, 햄프셔 대대는 '드제이다' 전투단을 사흘 동안 묶어두는 데 성공했다.

고립된 햄프셔 대대의 결의

햄프셔 대대를 지휘하던 윌리엄 C. 리(William C. Lee) 중령은 자신에게 배정된 진지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상부에 두 가지 안을 요청했다. 하나는 스스로 드제이다를 공격해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후퇴하여 이스트 서레이 대대와 연속 방어선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요청은 모두 거절당했고, 대대는 고립된 채 진지에 남아 최후까지 싸울 결의를 굳혔지만, 희망은 없었다.

올리브 나무 숲에서 벌어진 백병전

'드제이다' 전투단은 12월 1일 첫 보병 공격을 감행했으나 격퇴당했다. 햄프셔 대대는 극도로 공격적으로 맞섰고, 방어선에 생긴 틈새는 즉각적인 역습으로 봉합되었다.

다음 날 전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적은 전차 증원을 받았고, 이것이 끊임없는 백병전의 시작이었다. 전투는 올리브 나무로 뒤덮인 계곡 저지대에서 벌어졌고, 포병들은 목표물을 종종 마지막 순간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한때 독일 전차들이 방어선 내부로 돌파하여 불과 20미터 거리에서 한 개 소대를 섬멸하려던 찰나, 중대를 지휘하던 토머스(Thomas) 대위는 가장 심각한 위협이 전차가 아니라 호위 보병에게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