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오귀스트 프랑수아 마리 콜베르 드 샤바네 남작(Auguste François-Marie Colbert de Chabanais)

콜베르 드 샤바네 남작의 생애

오귀스트 프랑수아 마리 콜베르 드 샤바네(Auguste François-Marie Colbert de Chabanais)는 1777년 11월 18일 파리에서 태어나 1809년 1월 3일 스페인 카카벨로스(Cacabelos)에서 전사한 프랑스의 기병 장군이다.

오귀스트 프랑수아 마리 콜베르 드 샤바네 남작(Auguste François-Marie Colbert de Chabanais)

군 경력의 시작

콜베르 드 샤바네는 타르브 국민방위대 자원병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서부군(Armée de l'Ouest) 기병대에서 복무하며 귀족 출신 장교로서 방데(Vendée) 반군과 슈앙(Chouan) 세력 소탕 작전에 참여했다.

오귀스트 프랑수아 마리 콜베르 드 샤바네 남작(Auguste François-Marie Colbert de Chabanais)

나폴레옹 휘하의 활약

1795년 소위로 임관한 그는 그루시(Grouchy) 장군의 부관이 되었고, 1797년에는 아일랜드 원정에 참가했다. 이후 무라(Murat) 원수의 부관으로 발탁되어 이집트 원정에서 기병중대장으로 복무했으며, 아크레 공방전(성 요한 아크레 포위전)에서 부상을 입었다. 이후 데자이(Desaix) 장군과 함께 프랑스로 귀환했고, 마렝고 전투에서는 다시 무라의 부관으로 활약했다.

그는 대육군(Grande Armée)에 소속되어 1805년 말 준장으로 진급했으며, 프로이센과 폴란드 전역에서 복무하며 예나(Jena)와 프리틀란트(Friedland) 전투에서 용맹을 떨쳤다. 제국 남작 작위를 받은 후 같은 해인 1808년 스페인으로 파견되었다.

스페인 전역과 최후

스페인에서 그는 베티에(Bessières) 휘하에서 메디나 델 리오 세코 전투(1808년 7월 14일)에 참전했고, 11월 23일에는 란(Lannes) 휘하에서 투델라(Tudela) 전투에 참여했다. 이후 네(Ney) 원수 지휘 아래 경기병여단을 지휘하게 되었으며, 돌격 중 이마에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그의 이름은 현재 개선문(Arc de Triomphe)에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