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벌어진 테러 사건, 이른바 뮌헨 학살(Munich Massacre)은 1972년 9월 5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검은 9월(Black September)이 당시 올림픽에 참가 중이던 이스라엘 선수단을 상대로 자행한 공격이다. 이 사건으로 총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 측에서는 코치 6명과 선수 5명이 희생되었고, 검은 9월 소속 테러범 5명과 당시 뮌헨이 속해 있던 서독의 경찰관 1명 역시 사망했다.
검은 9월단의 팔레스타인 테러
뮌헨 올림픽 테러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사건을 기획하고 실행한 조직, 즉 검은 9월에 대해 알아야 한다. 검은 9월은 1970년 요르단에서 발생한 '검은 9월 사건' 이후, 파타흐(Fatah)와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 등 기존 팔레스타인 조직에서 활동하던 급진 세력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단체다. 창립자는 알리 하산 살라메(Ali Hassan Salameh)였다.
검은 9월은 1970년대에 걸쳐 수차례 테러를 감행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물론 유럽까지 광범위한 연결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독일의 혁명적 공산주의 단체인 적군파(RAF – Rote Armee Fraktion)와의 관계였다.
적군파의 일부 멤버는 북아프리카에서 검은 9월의 훈련을 받기도 했다. 일부 조사자들은 1972년 적군파 소속 공산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의 뮌헨 입국을 도왔다고 지목한다.
올림픽 선수촌 침입과 인질극
검은 9월의 계획은 이스라엘 올림픽 선수단 일부를 납치한 뒤, 이들을 인질로 삼아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된 2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수감자와 독일에서 체포된 적군파 멤버 2명의 석방을 협상하는 것이었다.
테러범 8명은 선수촌을 보호하던 울타리를 넘어 올림픽 선수촌에 침입했다. 오늘날 스포츠 행사에서처럼 철저한 보안이 이루어지지 않던 시절이었고, 그들은 소총, 권총, 수류탄이 든 가방을 들고 있었다. 이스라엘 선수단 일원이 머무르던 건물에 침입했을 때, 테러범들은 두 명의 거센 저항에 놀라게 되는데, 그중 한 명은 6일 전쟁 참전 용사였던 요세프 로마노(Yosef Romano)였다.
결국 로마노와 그의 동료는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세 명은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지만, 나머지 아홉 명은 테러범들에게 인질로 잡혔다. 테러범들은 독일과 이스라엘 당국에 테러 혐의로 구금된 수감자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요구가 거절되자 테러범들은 전략을 바꿔, 테러범과 인질 모두를 이집트 카이로로 이송해 줄 비행기를 요구했다.
계획은 헬리콥터를 타고 선수촌을 떠나 바이에른 주의 퓌르스텐펠트브루크 공군기지(Fürstenfeldbruck Air Base)로 이동한 뒤, 그곳에서 요구한 비행기를 제공받는 것이었다.
비극적 결말
독일 경찰은 헬리콥터가 뮌헨을 떠나기 전 매복 작전을 시도했으나, 임무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헬리콥터는 테러범과 인질 모두를 공군기지로 이송했다. 현지에 도착한 후 독일 측은 새로운 작전을 세웠다. 비행기 안에 잠복 요원을 미리 배치해 두고, 테러범들이 비행기를 검사하러 왔을 때 이들을 제압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작전은 비극으로 끝났다. 테러범 한 명이 비행기 내부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총격을 시작했고, 나머지 테러범들도 매복을 깨닫고는 선수들이 타고 있던 헬리콥터에 수류탄을 던졌다. 인질이었던 아홉 명은 모두 즉사했다.
이스라엘의 대응: '신의 분노'
당시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Golda Meir)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에게 '신의 분노(Wrath of God)'로 알려진 작전을 승인했다. 이 작전의 골자는 뮌헨 테러에 연루된 모든 인물과 검은 9월의 핵심 지도부를 추적해 제거하는 것이었다.
*이미지 출처: Shutterstock, Aija Lehtonen
글: Me. Claudio Fernand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