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6년 11월 15일부터 17일까지(혁명력 5년 브뤼메르 25일~27일), 제1차 이탈리아 원정 도중 벌어진 아르콜 다리 전투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지휘하는 약 19,000명의 프랑스 이탈리아군과 요제프 알빈치 장군이 이끄는 24,000명의 오스트리아군이 격돌한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직접 깃발을 들고 다리로 돌진했다는 일화는 프랑스 혁명 전쟁사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배경
요제프 알빈치의 지휘 아래 새롭게 편성된 오스트리아군이 보나파르트를 이탈리아에서 몰아내기 위해 진입했습니다. 이 군대는 두 개의 종대로 나뉘어 여러 차례 프랑스군과 충돌했습니다. 보나파르트는 브렌타에서 알빈치를 격파하는 데 성공했지만, 보부아 장군은 리볼리에서 패배했고 이어 라 코로나에서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보부아의 연패로 전력이 약화된 보나파르트는 결국 베로나로 철수해야 했습니다.
칼디에로 진지를 점령하려는 시도마저 실패하자, 보나파르트는 베로나 수비를 킬메인 장군에게 맡기고 아디제강을 따라 내려가 오스트리아군을 직접 맞이하기로 결심합니다.
전투 경과
서막
프랑스군은 롱코에서 아디제강을 도하한 뒤 지류인 알포네강을 향해 진격했습니다. 이틀에 걸친 전투 동안 프랑스군은 도하를 시도했지만, 피에르 오제로 장군과 앙드레 마세나 장군이 펼친 협공 기동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아르콜 다리 돌파
프랑스군은 오스트리아군의 포화가 쏟아지는 가운데 다리를 건너 알포네강을 넘어 아르콜 마을을 탈취하려 했습니다. 오제로는 아디제강을 건넜지만 아르콜 다리 앞에서 격렬한 사격에 밀려 후퇴했고, 마세나는 늪지대에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첫 공격에서 란 장군은 제58반여단 두 개 대대의 선두에 서서 도하를 시도했으나, 적의 맹렬한 포화 앞에 부대를 물릴 수밖에 없었고 그 자신도 두 차례 부상을 입었습니다. 오제로가 세 개 대대로 그를 지원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란은 응급 처치를 위해 롱코의 야전병원으로 옮겨져야 했습니다.
오제로는 부대를 방벽 쪽으로 이끌기 위해 깃발 하나를 집어 들고 선두에 나섰지만, 병사들은 그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탈리아군 사령관인 보나파르트 본인이 직접 깃발을 잡고 다리로 돌진해 그곳에 꽂아 놓았습니다.
목격자들이 전한 장면
이탈리아 원정에 동행했던 폴란드 출신 부관 조제프 술코프스키는 당시 장면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한편 총사령관은 상황을 파악하고 이미 전방 중간 지점까지 나아가 있었다.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손실, 적의 완강한 저항, 우리 병사들의 낙담을 전달받았다. 전투가 시작되었고, 승리하거나 멸망해야 하는 국면에서 그는 자신의 영광에 걸맞은 행동을 취했다. 참모진에 둘러싸이고 호위대를 거느린 그가 방벽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보였다. 그는 말에서 내려 검을 뽑고 깃발을 잡아 총탄이 쏟아지는 다리로 돌진했다. 병사들은 그를 보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따라 나서지 않았다."
또 다른 목격자는 그 후의 전개를 이렇게 전했습니다.
"그의 종대가 절반쯤 다리를 건넜을 때 측면 사격에 밀려 후퇴하고 말았다. 척탄병들이 보나파르트를 잡아 끌었고, 그는 늪에 빠져 허리까지 가라앉았다. 부상당한 채 밀라노에서 급히 달려온 란이 몸을 던져 장군을 감싸 보호했다. 부관 뮈롱도 같은 행동을 했다가 장군 장 질 앙드레 로베르와 함께 전사했다."
척탄병들이 도보였던 것과 달리 말을 타고 있던 란의 개입 덕분에, 사방으로 포위되었던 보나파르트는 적진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보나파르트는 마세나에게 증원을 보내려다 스스로 늪에 빠졌고, 벨리야르 장군이 병력을 규합해 또 한번 그를 구해냈습니다.
보나파르트는 북소병들에게 은밀히 오스트리아군 후방으로 이동해 최대한 큰 소음을 내도록 명령해 증원군이 도착한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이 북소병 중 한 명인 앙드레 에티엔은 이 공로로 훗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습니다. 프랑스군이 자신의 후방을 공격한다고 판단한 알빈치는 튼튼하게 구축했던 방어선을 분산시켰고, 이 덕분에 마세나가 아디제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보나파르트는 즉시 마세나와 오제로에게 마세나가 발견한 여울을 통해 적군을 협공으로 포위 섬멸하라고 명령했고, 전세는 프랑스군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습니다.
결과
프랑스군은 승리하여 이탈리아 반도 북부에 확고한 발판을 다졌습니다. 만토바 공성전은 계속 진행되었고, 이탈리아 원정은 1797년 오스트리아 세력을 이탈리아 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며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전투 사흘 뒤 보나파르트는 총재정부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습니다.
"장군들은 이 싸움의 중요성을 느끼고 선두에 나서서 우리 열을 아르콜의 작은 다리로 강행 돌파시키려 했으나 허사였습니다. 과도한 용기가 오히려 화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거의 모두 부상을 입었습니다. 베르디에, 웰, 베른, 란 장군이 전선에서 이탈했습니다 […] 란 장군은 이미 두 발의 총탄에 부상당한 상태에서 다시 전선으로 돌아왔다가 더 위험한 세 번째 부상까지 입었습니다."
전설이 된 깃발
보나파르트가 아르콜 방벽에 꽂았던 그 깃발은 총재정부로 보내졌습니다. 이듬해인 1798년 2월, 입법의회는 이 깃발을 앞세워 이탈리아군 前 총사령관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보나파르트는 다리에서의 영웅적인 활약을 기려 이 깃발을 란에게 하사했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몽텔로 공작가에 보관되어 있던 이 깃발은 정확히 언제 사라졌는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언뜻 의외로 보이는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이 깃발이 거의 흰색이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제5반여단 어느 대대의 군기였는데, 1794년의 법령에 따르면 모든 군기가 국민의 세 가지 색을 사용해야 했지만, '제1군기'라 불리는 단 하나의 깃발만이 파랑·흰색·빨강이 세로 띠로 배열된 현행 규정 형태를 취했습니다. 나머지 깃발의 디자인에는 각 지휘관의 재량이 허용되었습니다. 제5반여단의 깃발은 흰 바탕에 네 모서리에 작은 파란색과 빨간색 다이아몬드 문양이 새겨진 형태였으며, 보나파르트가 아르콜 방벽에 든 것이 바로 이 깃발이었습니다.
전투 개요
일시: 1796년 11월 15일 ~ 17일
장소: 아르콜
결과: 프랑스의 승리
교전국: 프랑스 공화국 vs 신성 로마 제국
지휘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vs 요제프 알빈치
병력: 프랑스 19,000명 vs 오스트리아 24,000명
손실:
- 프랑스군: 사상자 3,500명, 포로 1,300명
- 오스트리아군: 전사 535명, 부상 1,535명, 포로 4,141명, 포 11문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