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르눈노스 신(군데스트루프 가마솥 세부 장식, 기원전 1세기) • 위키미디어 커먼즈
1891년 5월 28일, 덴마크 북부 군데스트루프(Gundestrup) 마을 인근의 라에보모센(Rævemosen) 습지에서 이탄을 캐던 22세의 덴마크 청년 옌스 쇠렌센(Jens Sørensen)은 삽이 단단한 금속 물체에 닿는 감촉을 느꼈다. 그것은 지름 69cm의 거대한 은제 원반이었다. 이어진 발굴 작업에서는 13개의 큰 판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지름 25cm의 원형 판 하나, 약 21×25cm 크기의 사각형 판 일곱 개, 그리고 21×44cm 크기의 직사각형 판 네 개였으며, 전체 무게는 9kg에 달했다.
이 판들은 모두 순도 높은 은으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환상적인 동물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 흉상, 신화나 성스러운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기이한 장면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철기시대 유물 가운데 손꼽히는 중요한 발견임이 분명했다.
14개 은판이 이루었던 하나의 그릇
발견된 지 나흘 만인 6월 2일, 이 조각들은 코펜하겐으로 운반되었다. 당시 올드노르디스크 박물관(현 덴마크 국립박물관) 학예관이던 소푸스 뮐러(Sophus Müller)는 즉각 연구에 착수해 파편들을 조립하기 시작했고, 화학 분석 결과 이 판들이 97% 은과 3% 금으로 구성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뮐러는 이 판들이 한때 서로 결합해 하나의 거대한 용기를 이루었음을 밝혀냈다. 원형 판은 바닥을 이루었고, 일곱 개의 사각형 판(원래는 여덟 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은 외벽을 구성했으며, 다섯 개의 직사각형 판은 내부를 덮는 역할을 했다. 내판은 관형 테두리를 통해 외판 안쪽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그 흔적은 세 개의 작은 파편으로만 남아 있다.
이로써 청동기시대 말부터 중세 초기까지 유럽 대륙과 영국 제도의 켈트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사용되던 금속 가마솥의 실례가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가마솥은 음식을 조리·저장하거나 나르는 데 쓰였고, 의례나 제례에서 특별한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아마도 사회 최상위 계층만이 소유할 수 있어 소유자의 지위를 과시하는 도구였고, 그 사용 역시 중요한 행사에 국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트라키아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
소푸스 뮐러는 군데스트루프에서 발견된 이 가마솥이 습지에 묻히기 전 실제로 사용된 적이 있음을 지적했다. 바닥 판에서 황소의 뿔이 떨어져 없어진 것 같은 명확한 마모 흔적과 손상이 확인되었고, 외관상 강제로 해체된 뒤 습지에 버려진 것으로 보였다. 뮐러의 연구 이후 여러 학문적 시도가 이 유물의 양식, 제작 시기, 출신지를 규명하려 했지만, 오늘날에는 덴마크 현지에서 제작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학계에는 두 가지 상충하는 가설이 존재한다. 하나는 갈리아의 켈트인들의 작품이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트라키아에서 제작되었다는 설이다. 흥미롭게도 어느 쪽 가설에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있다. 가마솥이 켈트와 트라키아 양쪽의 기술적·양식적 특징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가성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입체적인 실루엣을 표현하는 기법이 트라키아 금세공인들의 전통 기법에 기반하고 있어 가마솥 자체는 트라키아에서 만들어졌으나, 당시 트라키아인과 켈트인은 서로 이웃한 민족이었기에 투구나 전쟁 나팔(카르닉스, carnyx)과 같은 켈트적 요소가 함께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제작 시기는 대략 기원전 150년경으로 추정된다.
덴마크에 도달한 경로는 여전히 미스터리
그렇다면 이 가마솥은 어떻게 멀리 떨어진 덴마크 땅에 이르게 되었을까? 일부 학자들은 킴브리(Cimbri)족이 가져왔다고 본다. 킴브리족은 덴마크와 독일 북부 지역에 거주하던 게르만계 민족으로, 로마 문헌에 따르면 기원전 120년부터 100년 사이 킴브리족을 비롯한 게르만 민족의 대규모 이동이 유럽의 광대한 지역을 휩쓸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기원전 114년에는 킴브리족과 스코르디스키(Scordisci)족 사이에 동맹이 맺어져, 킴브리족이 스코르디스키족의 영토에서 5년간 머무는 것이 허용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마솥이 정확히 어떤 경위로 킴브리족의 손에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원주지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가마솥을 함께 가져왔고, 이후 습지에 바치는 형태의 봉헌품으로 묻혔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신비로운 장식과 얽힌 출생의 비밀을 지닌 이 가마솥은 오늘날에도 고고학계의 끊임없는 연구 대상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