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레픽 백작(Louis Lepic), 나폴레옹 시대의 전설적 기병 지휘관
루이 레픽(Louis Lepic)은 1765년 9월 20일 프랑스 몽펠리에(Montpellier)에서 태어나 1827년 1월 7일 앙드레지(Andrésy)에서 세상을 떠난 군인이자 제국 백작이다. 그는 나폴레옹 휘하 제국근위대 기마척탄병(Grenadiers à Cheval) 연대를 지휘했으며, 특히 에일라우 전투에서 남긴 전설적인 돌격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 루이 레픽 백작
혁명과 전쟁이 열어준 빠른 승진
레픽은 16세에 용기병(dragoon) 부대에 입대했다. 프랑스 혁명과 이어진 전쟁이라는 격변기는 젊은 그에게 비상한 출세의 발판이 되었다. 1793년 3월 기병중대장으로 임명된 그는 방데(Vendée) 반란 진압전에 참여했고, 몽테귀(Montaigu)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다.
1796년에는 이탈리아 원정군으로 자리를 옮겨 여러 전투에서 용맹함을 인정받았으며, 수차례 부상을 치렀다. 1805년까지 이탈리아에 주둔하던 그는 아우스터리츠 전투 이후 제국근위대 기마척탄병 연대의 중령(colonel-major)으로 발탁되었다. 이후 프로이센과 폴란드 전역에 참전했고, 1807년 아일라우(Eylau) 전투에서 크게 다친 공로로 준장(général de brigade)으로 승진했다.
1808년에는 스페인 전선에 파견되었고, 곧 독일 전역에 소집되어 1809년 5월 제국 남작(baron de l'Empire)에 서임되었다. 같은 해 바그람(Wagram) 전투에서 기병 돌격을 이끌었으며, 1810년부터 1811년까지는 다시 스페인과 포르투갈 전선에서 싸웠다.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도 플라토프(Platov) 코사크 기병과의 교전(11월 7일)에서 재차 두각을 나타냈다.
1813년 2월 사단장(général de division)으로 승진한 레픽은 같은 해 작센(Saxe)에서 마지막 전투를 치렀다. 1815년 1월, 왕정복고 이후 루이 18세는 그에게 백작(comte) 작위를 하사했다. 그의 이름은 오늘날 파리 개선문(Arc de Triomphe de l'Étoile)에 새겨져 있다.

- 에일라우 전투의 레픽
발췌 — 『대육군의 병사들(Les soldats de la Grande Armée)』, 페랭(Perrin) 출판사, 1998년, J.C. 다맘(J.C Damamme)
그리고 레픽, 무엇보다도 신성한 인물이 아닌가! 벨리트(vélite) 출신 목격자 빌롱(Billon)이 에일라우에서 본 레픽은, 용기와 힘, 그리고 대담함이 넘치는 거인 같은 존재였다. 레픽은 바로 에일라우 전투에서 기마척탄병의 눈부신 돌격을 이끈 장본인이다. 그 유명한 돌격의 현장을 함께 상상해 보자.
거센 눈보라 속에서 병사들과 말들은 미동도 없이 멈춰 서 있었다. 말들은 검은색이었고, 그 위에는 탄약통용 구리 장식이 달린 곰가죽 모자를 쓰고 긴 흰색 외투를 입은 기수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오직 그들만이 사용하는 우아한 사브르(sabre)가 쥐여져 있었다. 에일라우 전투 당일, 연대는 연대장 레픽의 지휘 아래 놓여 있었다. 눈송이 사이를 거침없이 관통해 오는 러시아 포탄들은 사람과 말을 집어삼켰다. 전설적이라 일컬어지는 용기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수들은 말의 목에 몸을 숙였다.
그때, 포성의 요란을 뚫고 하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레픽이 외친 것이다. "고개를 들어라! 산탄은 똥이 아니야!" 이 힘찬 외침에 이어 돌격이 시작되었다. 기마척탄병들은 러시아 보병대를 짓밟으며 돌진했지만, 눈보라 속에 길을 잃고 결국 적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한 러시아 장교가 대열에서 앞으로 나서더니 정중하게 레픽에게 항복을 권유했다. 레픽은 그를 노려보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저 얼굴들을 좀 보시오. 항복할 것 같으냐 말이오." (일부 판본에는 더 강렬한 어조의 단어가 쓰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사브르 끝을 향해 든 채, 레픽은 살아남은 기병들을 이끌고 황제에게 이르는 붉은 길을 내었다.
황제는 그를 맞으며 갓 수여한 새 계급으로 그를 환영했다.
"장군, 당신이 포로가 된 줄 알았소. 정말 안타까웠소."
레픽이 답했다.
"폐하께서는 제 죽음의 소식만 듣게 되실 겁니다!"
이번 전투에서 그는 실제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았다. 나폴레옹에게 경례할 때 레픽의 몸에는 옷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부츠는 한 짝뿐이었고, 여러 곳의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저녁, 새로 임명된 장군은 황제로부터 5만 프랑을 받았고, 그는 이 돈을 살아남은 척탄병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이 장면을 기록으로 남긴 빌롱이 "그야말로 회화의 훌륭한 소재가 되는 장면"이라고 탄식한 것이 놀랍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