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제2차 세계대전과 수바스 찬드라 보스의 부상
1942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무렵 수바스 찬드라 보스가 인도 동부에서 공습과 지상 공격으로 연이어 성공을 거두자 콩그레스 지도부는 큰 공포에 휩싸였다. 그들은 보스의 비행기가 델리에 착륙하기만 하면 영국이 인도의 정권을 보스에게 넘겨줄 것이라 상상했고, 그 생각만으로도 콩그레스 지도자들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네루의 충격적인 발언: "칼을 들고 델리 거리에서 수바스를 맞이하겠다"
이러한 위기감 속에서 자와할랄 네루는 공개 석상에서 "우리는 칼을 들고 델리 거리에서 수바스를 맞이하겠다."라고 선언했다. 콩그레스가 그토록 내세우던 비폭력주의의 히말라야가 패배에 대한 공포 앞에서 순식간에 녹아내린 순간이었다.
인도 철수 운동(Quit India Movement)의 발발
1942년 8월 9일, 콩그레스는 봄베이에서 회의를 열고 간디의 '실행하라, 아니면 죽으라(Do or Die)'와 '지금이 아니면 결코 아니다(Now or Never)'라는 구호 아래 영국에게 "오늘 밤 당장 인도를 떠나라"고 요구했다. 이는 '8월 혁명'이자 '인도 철수 운동'으로 불린다. 그날 밤 수많은 콩그레스 지도자가 투옥되었고, 이에 항의하는 전국적인 폭력 사태가 발생해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났다.
무슬림 리그의 위기와 진나의 대응
"선 파키스탄, 후 독립" vs 콩그레스의 무조건 독립 요구
콩그레스가 인도 철수 운동을 시작하자 무슬림 리그는 큰 곤경에 처했다. 무슬림 리그는 여전히 '선 파키스탄, 후 독립'을 외쳤지만, 콩그레스는 파키스탄 분할 없이 즉각적인 독립을 요구하고 있었다. 만약 영국이 분할 없이 철수한다면, 무슬림 리그는 영국이 아닌 콩그레스와 맞서 파키스탄을 쟁취해야 할 판이었다.
이에 모하마드 알리 진나는 거친 언사로 콩그레스를 비난하며 무슬림들에게 이 운동에서 멀어지라고 호소했다. 그는 "콩그레스는 정부와의 투쟁을 선포했지만, 타인의 이익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자당의 이익만 챙겼다."고 맹비난했다.
운동의 폭력화와 '깡패' 낙인
운동 초반 콩그레스 거물 지도자들이 투옥되면서 지도부는 소규모 활동가들에게 넘어갔고, 이들은 간디의 비폭력 원칙을 표방하면서도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폭력을 자행했다. 이 때문에 무슬림 리그 계열 언론은 영국 통치에 맞선 콩그레스 인사들을 '깡패(goons)'라 부르며 매도했다. 심지어 영국 언론보다 무슬림 리그 언론이 콩그레스 지도자들을 더 가혹하게 공격했다.
무슬림 리그, 최대 수혜자가 되다
무슬림 리그 워킹 위원회는 연합국에 인도의 1억 무슬림이 거주하고 다수인 지역에서 주권 국가를 수립하겠다는 요구를 각인시켰다. 인도 철수 운동의 최대 수혜자는 무슬림 리그였다. 콩그레스 지도부가 수감된 사이 무슬림 리그 지도자들은 자유로운 신분으로 영국의 전쟁 수행에 적극 협조하며 영국의 동정을 샀고, 이는 영국이 이미 내비치던 무슬림을 위한 별도 파키스탄 수립 의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진나의 델리 연설: "파키스탄을 취하거나, 아니면 멸망하리라"
1942년 11월 중순 델리에서 진나는 인도 무슬림들에게 파키스탄 쟁취에 전념할 것을 호소하며 "우리가 파키스탄을 취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존재를 멸망시키리라."고 선언했다.
힌두 마하사바의 반발: 사바르카르의 단호한 반대
1942년 12월 칸푸르 대회에서 힌두 마하사바 의장 비르 사바르카르는 진나의 요구에 맞서 "파키스탄 요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천명했다. 사바르카르는 샤마프라사드 무케르지 위원장 하에 영인도 협정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했으나, 무케르지가 진나와 담판을 지었음에도 결실을 보지 못했다.
린리스고 총독의 '인도 지리적 통일성' 발언
당시 총독 린리스고 경(재임 1936~44)은 취임 당시 영국 산하 자치 연방인 '인도 연합' 구상을 꿈꿨으나, 제후국들의 거부와 콩그레스·무슬림 리그의 대립, 콩그레스의 즉각 철수 요구로 상황이 통제 불능에 빠졌다. 1942년 12월 17일 연합상공회의소 연례 회의에서 그는 무슬림 리그 창립 이래 영국 통치자가 결코 하지 않았던 발언을 했다.
"인도의 지리적 통일성은 유지되어야 한다. 분열된 인도는 세계에서 아무런 중요성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슬림 리그의 반발: "분할하고 떠나라(Divide and Quit)"
린리스고의 발언에 무슬림 리그 지도자들은 격분했다. 총독이 자신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한밤중에 영국 철수를 요구하는 콩그레스 편을 든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무슬림 리그는 파키스탄 요구를 더욱 고조시켜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국의 귀에 닿게 하려 애썼다.
하지만 영국의 귀가 열리지 않고 파키스탄 요구가 진전되지 않자, 1943년 12월 카라치 회의에서 무슬림 리그는 콩그레스의 '인도 철수(Quit India)' 구호에 맞서 기묘한 구호 '분할하고 떠나라(Divide and Quit)'를 내걸었다. 인도를 힌두스탄과 파키스탄으로 분할한 뒤 영국이 떠나라는 요구였다.
벵골 대기근: 300만 명의 희생
이 와중에 끔찍한 인재(人災)가 발생했다.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 전선의 군량미로 인도의 쌀과 밀을 막대하게 반출한 결과, 1943년 벵골에 대기근이 들어 300만 명이 아사했다. 이로 인해 인도인들의 대영 증오심은 정점에 달했고, 공산주의 운동과 혁명 활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무슬림 리그는 이 참혹한 인류의 비극과 혁명 운동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파키스탄, 파키스탄'만 외치며 독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