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제르베 쉬베르비(Jacques-Gervais Subervie)는 1776년 9월 1일 프랑스 렉투르(Lectoure)에서 태어나 1856년 3월 10일 리뉴(Ligneux) 코뮌에 위치한 파랑셰르 성(Château de Parenchère)에서 생을 마감한 프랑스의 장군이자 남작이다. 나폴레옹 시대를 대표하는 기병 지휘관 중 한 명으로, 혁명 전쟁부터 백일천하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대를 관통한 인물이다.
초기 군 경력과 라안 장군과의 인연
제르(Gers) 주 의용병들이 소위(lieutenant)로 선출한 쉬베르비는 1792년부터 1795년까지 동피레네(Pyrénées-Orientales) 방면군에서 복무했다. 이후 이탈리아 방면군에 합류하여 같은 제르 출신 장교였던 장 라안(Jean Lannes) 장군의 부관(aide-de-camp)으로 발탁되었으며, 라안을 따라 몰타 원정에 동행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병을 얻어 임무를 수행하기 어려워졌다.
1800년 몰타가 함락된 후 귀국한 그는 다시 라안 밑에서 복무를 재개했고, 1805년부터 1807년까지 대육군(Grande Armée)의 일원으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폴란드 등지에서 벌어진 연이은 전역에 참전하며 군사적 역량을 쌓아갔다.
이베리아 반도 전역과 승진
1805년 대령(colonel)에 올라 있던 쉬베르비는 1808년부터 1811년까지 이베리아 반도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가해 공적을 쌓았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809년 제국 남작(baronde l'Empire) 작위를 받았으며, 1811년에는 준장(brigadier general)으로 승진했다.
러시아 원정과 프랑스 방어전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 그는 모스크바 강(Moskva) 전투에서 중상을 입어 빌나(Vilna)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아야 했다. 회복한 뒤에는 1813년 독일 전역과 1814년 프랑스 전역에서 기병여단을 지휘하며 후퇴하는 프랑스군을 엄호했다.
특히 1814년 3월 30일 파리 방어전에서 그는 세 곳에 창상을 입을 정도로 용맹하게 싸웠다. 같은 해 4월 3일, 나폴레옹 황제는 그의 공헌을 기려 사단장(général de division)으로 승진시켰으나, 황제의 퇴위 이후 수립된 임시정부가 이 임명을 무효로 처리했다.
백일천하와 워털루
반급(半俸) 처분 상태에 놓인 쉬베르비는 1815년 백일천하(Hundred Days)가 시작되자 열정적으로 나폴레옹에게 재합류했으며, 결정적인 전투였던 워털루 전투에도 참전했다. 그러나 제정의 최종 붕괴와 함께 그는 다시 공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왕정복고 이후의 삶과 유산
1830년 7월 왕정이 복구될 때까지 한직에 머물렀던 그는 루이필립(Louis-Philippe) 치세에 들어서야 기병 감찰관(inspector general of cavalry)으로 임명되며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정계에도 진출하여 1831년부터 1842년까지 제르 주의 하원의원(deputy)으로 선출되었고, 이후에는 외르에트루아르(Eure-et-Loir) 주 의원으로 활동하며 1851년까지 의회에 몸담았다.
프랑스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그의 이름은 파리 에투알 개선문(Arc de Triomphe de l'Étoile)에 새겨져 오늘날까지 기리고 있다.